(17)″돈 없는 비참한 생활은 싫어〃 주부들 노후준비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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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주부 민정화씨(44·수원시 매교동)는 지난해부터 1년간 요리학원을 다닌 끝에 올 봄 조리사자격증을 따냈다. 친구 2명과 함께 돈과 시간을 특별히 투자해 익힌 요리솜씨는 민씨가 준비중인 노후대책중의 하나. 민씨는 나이가 든 후 자녀들집을 오가며 경조사나 생일 등 큰일이 있을 때면 요리솜씨를 발휘, 환영받는 시어머니·할머니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요리법을 정식으로 배우고 있다.
주부 박영주씨(47·서울 목동)는 두 달 전 언니 2명과 돈을 모아 경기도 구석진 시골에 1백평가량의 땅을 샀다. 부동산투기가 아니냐는 주위의 눈길도 있었지만 이 땅은 박씨 자매가 자녀들을 결혼시킨 뒤 함께 노후의 여가를 즐길 안식처다.
고령화·핵가족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안정된 노후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주부들이 최근 들어 급속히 늘고있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의학의 발달은 우리 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을 70·8로 연장시켜 놓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고령화사회에의 진입을 앞두고 그에 대한 사회보장책은 거의 마련돼있지 못한 실정이다.
게다가 현대판 고려장사건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제는 자녀의 효심에 의지해 자신의 노년생활을 보장받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인식이 번져나가면서 젊었을 때부터 내 손으로 노후를 준비하려는 경향이 주부들 사이에서 고조되고있다.
이런 경향은 노후연금보험의 가입현황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국내 6개 생명보험회사에 새로 가입한 연금보험액은 1백5조9천억원 정도로 지난 84년에 비해 8.3배나 늘었다.
「돈 없는 노년은 가장 비참한 생활」이라는 인식이 주부들로 하여금 빠듯한 가계비를 쪼개 미래를 준비케 하는 것이다. 삼성생명보험의 여환열 과장은 『10년 전만 해도 노후보장보험에 가입하기를 꺼려하거나 가입해도 40∼50대가 주류였으나 요즘와선 20∼30대주부들의 가입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노후연금보험의 신규가입액이 전체보험 신규가입액의 60%정도를 차지, 앞으로도 가장 전망이 밝은 주력상품』이라고 말한다.
이같이 경제적인 내실을 다지는 한편으로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의 고립·소외를 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주부도 많다. 생활에 쫓겨 잊고 지냈던 학교친구를 다시 만나거나 봉사활동 등을 통해 새로 친구를 사귀는 일, 생활에 요긴한 기술을 익혀 스스로 가족이나 이웃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는 일등이다.
편물가 김순희씨는 『편물을 배우는 주부들 중에서 다음에 나이 먹은 뒤 정성스레 옷을 짜서 며느리에게 주면 고부관계도 좋아지고 자신의 소일거리도 될 수 있어 배우는 주부도 가끔씩 있다』고 전한다.
이윤숙 한국노년학회회장은 『노인의 삼고로는 보통 불건강·빈곤·고독을 꼽는다』고 전제하고 주부들의 이 같은 준비활동은 빈곤과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외에 건강을 가꾸는 일에도 힘써볼 것을 권한다.
이 회장은 앞으로의 노인은 ▲쓸모 있는 사람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 ▲스스로 할 일을 만드는 사람이어야만 젊은 층과 더불어 살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경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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