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뉴욕 암흑가/화교갱단에 월남계 도전(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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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꾼」 노릇하다 조직만들어 “분가”/부두목 피살에 복수극
뉴욕 차이나타운의 암흑가에는 기존 화교계 갱조직에 신흥 베트남계가 최근 도전장을 던져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중국 특유의 울긋불긋한 집색깔로 단장한 요리집ㆍ상점들이 즐비한 이곳 차이나타운에는 홍콩ㆍ대만계의 지하조직 고스트섀도(귀영),플라잉 드래건(비룡),화이트 타이커(백호) 등이 기존 갱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홍콩의 중국통합이 결정된 후에는 홍콩계 지하조직이 미국ㆍ캐나다 등지에 자금과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뉴욕시경 아시아자문위원회의 앨런 무라카미씨는 이들 화교계 지하조직은 고도로 정제된 마약밀매와 아시아여성들의 매춘업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몇년전부터 중국계 단체들은 베트남계 청년들을 고용,폭력의 「전위부대」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들 베트남계 청년들이 화교계 지하조직의 그늘 아래서 점차 힘을 키워 급기야 「본 투 킬」(Born to Kill)이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본 투 킬」이란 베트남전 당시 미 해병대원들이 그들의 철모에 즐겨 써넣었던 낙서로 「타고난 살인자」란 의미.
베트남전의 참혹한 상황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베트남계 청년들인만큼 다른 아시아계 지하조직에 비해 기동력이나 호전적 기질면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아직 차이나타운의 중심부에서까진 감히 화교계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으나 주변지역은 이미 상당부분 잠식,화교계 상점으로부터 매월 1천∼2천달러씩의 자릿세를 갈취할 정도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강도ㆍ절도 등 강력범죄에도 손을 뻗쳐 기존 화교계조직의 기반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이에 대해 고스트 섀도등 화교계가 이들을 벼르고 있어 언제든 충돌이 벌어질 상황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베트남계 조직 「본 투 킬」 부두목 빈 두(21)가 차이나타운의 번화가 캐널 스트리트에서 누군가에게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빈 두의 장례식에 참석한 1백50여명의 베트남인에 대해 같은 베트남인 복장을 한 수명의 괴한이 기관총을 난사,상당수가 부상했다.
아직 범인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본 투 킬」의 화교계 지하조직에 대한 복수극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이미 지난 8월에도 베트남계 청년들에 의한 화교경영 식당ㆍ상점 등의 습격이 있어 무력보복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각종 인종간 대립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어온 미국에서 차이나타운을 둘러싼 화교계와 베트남계의 세력다툼은 다인종국가 미국의 새로운 단면으로 등장하고 있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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