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형님 남의 동생 40년만의 통화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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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통일때까지 오마니묘 잘 모셔라”/“오마니께 죽 한사발 못올렸구나”/통화중 시종 오열… 북경상봉 기약
북의 큰형과 남의 동생들이 21일새벽 중앙일보주선으로 40년만에 서울과 북경에서 극적인 전화상봉을 했다.
북의 이병문씨와 남의 동생들과의 통화내용은 마디마디가 한에 맺힌 것이어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시한번 절감케 했다.
다음은 이들의 통화내용.
◇병룡씨와의 통화
▲병문=네가 병룡이냐. 신길동사니.네옆집,앞집이 누구냐.
▲병룡=네. 신길동 산 129번지요. 옆집이 봉환네고,앞집이 조일석씨네 잖아요.
▲병문=그래. 조씨네 못가 최흥용이네가 있다. 네가 병룡이 맞구나.
▲병룡=네 형님.(울기시작)
▲병문=「오마니」는 살아 계시냐.
▲병룡=어머니는 돌아가셨단 말입니다. 금년 1월14일에 돌아가셨어요. 2년만 더 살면 형님을 볼 수 있을텐데 하시면서요.(형제가 모두 오열하느라 잠시 중단)
▲병룡=형님 음성이 변했어요. 신문에서 얼굴보니 많이 늙으셨더군요.
▲병문=「오마니」가 시집오면서 가져온 공단을 팔아 내 등록금을 냈지. 너희들은 엿을 좋아했고. 도마도밭은 어떻게 됐지.
▲병룡=도마도밭은 팔아서 지금은 농사 안지어요. 형님 자녀는 몇이에요.
▲병문=처녀ㆍ총각있어. 처녀는 이은희,총각은 스무살인데 이욱이야.
◇병조씨와 통화
▲병조=형아야. 나 병조인데.
▲병문=병조야 죽지않고 있었구나.
▲병조=형도 안 죽었어? 난 죽었는줄 알았어.(울음)
▲병문=너 자꾸 앓더니 지금은 어떠냐.
▲병조=국민학교 다닐때 학질 많이 않았지. 지금은 형제중에서 제일 건강해.
▲병문=얼굴이 넙쭉한 네가 어머닐 닮아 건강할 줄 알았어.
▲병조=지금 중앙일보주선으로 신문사에서 전화하고 있어. 신문사진을 보니 형 얼굴이 조금 통통해졌으나 예전 모습 그대로야.
▲병문=나도 중앙일보에 고맙다고 했다. 무슨일 하니. 형은 무얼하고.
▲병조=저는 경방에 있어요. 생산부 감독직으로요. 형도 경방에서 정년퇴직해서 나왔구요.
▲병문=정년퇴직이라는게 뭐냐.
▲병조=왜 나이많이 먹으면 회사그만두는 것 말이에요.
▲병문=너 발에 면도칼로 빈 흠집있지.
▲병조=왼쪽 새끼발가락요. 형이 장난으로 흠집을 냈지요.
▲병문=다들 어디 살고 있니.자가용은 가지고 있고….
▲병조=형은 서울 독산동이고 나는 광명시 철산동 36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모두들 자가용도 가지고 있으니 염려마세요.
어머닌 형 사진이 없어 형 성적표에 붙은 사진을 떼내 밤낮으로 가슴에 품고 계셨지요.
▲병문(울먹이며)=내가 원통하구나. 「오마니」께 죽 한사발 올리지 못했으니. 가슴이 답답해 죽겠다.
▲병조=어머닌 형 사망신고했어도 서울 보문동 보문사에 축문을 붙여놓고 형이 객지에서 죽지않고 잘 살길 빌었어요.
어머니가 운명하시던 날 손가락을 두개 펴고는 2년만 더 살았으면,더 살았으면 하셨어요.(울음)
▲병문=야 저어(말을 잇지 못하고)…. 병조야 너희들이 「오마니」모시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병철이는 어딨니.
▲병조=막내는 이 자리에 없어요. 북경에서 형한테 곧 전화연락이 온다고 해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병철이는 못 데려왔어요.
◇병룡씨와 다시 통화
▲병문=「오마닌」 어디다 모셨니.
▲병룡=시흥 전주이씨 가족공동묘지에요.
▲병문=너 통일될 때까지 그 묘를 잘 지켜라. 내가 가서 큰절해야 되지않니.
◇작별인사
▲병룡=동생들 감싸면서 열심히 살테니 우리 염려마시고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세요.
▲병문=그래 동생들 잘 보고… 죽지만 않으면 된다. 내 눈물이 네 가슴에 떨어지는 줄 알아라.<정리=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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