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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버려야 할 부동산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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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첫째, 국민을 가르치려는 계몽의식이다. 국민이 잘 몰라 정책의 효과가 안 나온다, 집 사지 말고 기다리라는 발언이 그런 의식의 반영이다. 이를 듣는 국민의 반응이 어떻겠는가. 출세와 보신에 신경 쓰는 소수 공무원과, 재산을 지키고 불리려는 다수의 국민을 비교해 보자. 자기 재산을 건 사람들의 긴장감.집요함.집중력을 공무원의 탁상행정이 이겨낼 수 있겠나.

복부인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아파트 우편함에는 시세정보를 담은 광고전단이 넘쳐 난다. 휴대전화엔 어디가 오르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든다. 금융사들은 시세 꽉꽉 채워 대출해 주겠다며 손짓한다. 이런 환경 속의 국민에게 공무원이 무얼 깨우쳐 주겠다고 나설 여지는 없어 보인다. 속된 말로 '너나 잘하세요'다.

둘째, 거품에 대한 환상이다. 현재의 집값엔 투기에 의한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따라서 강력한 투기억제 대책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세금폭탄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실제 세금폭탄은 유례없이 강력하다. 머리 좋은 공무원들이 훈장 받아가며 만들었는데 어련하겠나. 그런데 그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거품은 왜 꺼지지 않는 걸까. '버블 세븐'이라며 장소까지 지정했는데 오폭(誤爆)했을 리도 없다. 무슨 '방탄 거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거품이라면 벌써 꺼졌어야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거품이란 게 착시현상은 아니었는지, 오를 만해서 오른 건 아닌지, 겸허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거품이란 실제 가치보다 터무니없이 뻥 튀겨진 가격을 가리킨다. 흔히 저금리, 교육여건, 공급 부족 등이 거품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잘 따져 보면 이들은 집의 실제 가치를 높이는 변수다.

가계자산의 85%가 부동산에 묶이고,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을 들어 거품이 끼었다는 주장에도 다소 비약이 있다. 개인의 평균적 자산구성이나 소득수준을 특정 지역의 부동산 거품과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다. 진단이 잘못됐다면 처방도 잘못됐으니 이참에 재진을 받아 보자는 뜻이다.

셋째, 시장의 실패를 깨끗하게 정리하겠다는 과잉 사명감이다. 시장은 실패하기 쉬우니 정부가 나서 손봐 줘야 한다는 공무원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불로소득의 차단과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대의명분을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그러나 까놓고 얘기해 보자. 시장이 늘 최선의 방향으로 흐르는 건 아니다. 자원의 최적 배분이 이뤄진 완벽한 시장은 교과서에서나 찾을 일이다. 현실에선 어딘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게 마련이다. 근본적으론 자원의 희소성과 시장의 불확실성 탓이다.

이를 무작정 때려잡으려 하다간 거래비용만 높여 소탐대실하기 십상이다. 문제가 아닌데도 문제라고 잘못 인식해 처방을 내놓음으로써 정말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정부의 실패다.

지난주의 긴급 부동산 관계장관 회의도 정부의 실패 탓에 소집됐다고 볼 수 있다.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정부가 환상의 수준을 넘어 주술(呪術)에라도 홀린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주술의 속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남윤호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