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박스] 지방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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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비너스의 몸매를 망가뜨리는 것도 지방이다. 불필요한 지방을 복부.허벅지 등 원치 않는 곳에 쌓아놓는 것이다. 특히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S라인이 무너지는 분수령이다. 아이 양육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도록 한 조물주의 배려가 여성들에게 엄청난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것.

여성의 군살을 제거하기 위해 의학계의 노력이 만들어낸 작품이 지방흡입술이다. 1977년 프랑스에서 개발돼 국내에는 1980년대 중반에 도입됐다. 문제는 종종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지금껏 의사들도 꺼려하는 시술이라는 점.

우리나라에선 처음 지방흡입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1994년 한글판 최초의 성형외과 교과서에 신체윤곽교정술을 집필한 골든벨 성형외과 김봉겸 원장의 회고.

"도입 당시 발표된 지방흡입 수술결과는 너무 획기적이었고, 원리도 간단했다. 이를 본 의사는 모두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쉽게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지방흡입이란 근육층 위에 있는 피하지방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곳에 분포된 수많은 혈관과 신경을 다치지 않을 수 없다. 부작용은 수술부위가 광범위해지고, 또 지방을 많이 걷어내면서 속출했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지방흡입술이 주춤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수술의 관건은 혈관 등 조직을 얼마나 덜 손상하면서 지방만을 뽑느냐는 것. 그는 "초음파나 물분사, 진동기 등 지방흡입을 도와주는 장비들이 있지만 대량으로 지방을 뽑아낼 수 있는만큼 조직손상도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고안한 수동식 지방파괴봉을 이용한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손의 감각만으로도 지방덩어리를 부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 이렇게 지방을 미리 흩어놓으면 작은 음압으로도 조직손상을 최소화하며 지방을 빼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흡입술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강조한다. 첫째는 많이 뽑지 말라는 것. 순수지방만을 기준으로 한번에 1500㎖ 이내가 적정하다. 2000㎖만 넘어도 회복과 치유에 어려움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여러 부위를 동시에 시술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우려를 표한다. 순차적으로 몇회에 나눠 하라는 것.

둘째는 광범위한 절제부위의 경우엔 국소마취가 아닌 전신마취를 권한다. 셋째 지방제거 부위에 주입하는 수액양도 줄일 것을 주장한다. 현재 1000㎖ 이상 들어가는 양을 200㎖ 이하로 줄이라는 것. "혈관수축 효과는 있지만 체내 수액이 크게 늘어나면 홍수가 나 가옥이 침수되듯 폐가 망가져 부종과 호흡곤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더 큰 문제는 수액에 첨가된 국소마취제의 용량이 증가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는 "이런 원칙만 지켜준다면 지방흡입술은 부분비만을 개선하는 가장 훌륭한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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