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는 이산 한 생사라도 알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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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LA로 이민간지 어언 8년째. 가족친지와 친구도 만나고 고국산천도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1년이면 두세 번 고국을 방문한다. 나는 함경남도 이원이 고향인 실향민이다. 마침 이번 방문기간에 남북총리회담이 열려 큰 관심과 기대 속에 신문과 TV를 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고통과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같은 혈육끼리 외부적 강제로 서로 헤어져 산다는 것처럼 가슴아픈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번에 끝난 1차 남북고위회담에서 60세 이상 노인들의 상호방문을 협의하기 위한 적십자회담개최에 합의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난 83년 6월 KBS가 방영한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에서「혈육은 반드시 만나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피부로 확인한 바 있다.
이 세상 어디에 핏줄을 눈앞에 두고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을까.
이산가족의 문제는 사상이전의 천륜의 문제요, 인도적 문제다. 어떠한 정치적·사상적 명분으로도 이를 방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화해와 대화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경우 소련·중국 등지에서 살고 있는 해외 이산가족의 안부와 소식은 그런대로 전해지고 있다. 조총련 재일 동포들의 모국방문도 활발히 진행되는가 하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사할린동포들의 왕래마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넓지도 않은 한 울타리 안에 흩어져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들이 가까운 핏줄을 찾아 최소한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만이라도 상호 왕래치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전면적인 왕래가 어렵다면 우선 생사확인과 서신왕래부터라도 실시하는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김영환<1901 Pacific Ave. Long Beach CA. 90806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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