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의 싸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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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네덜란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면 으레 목가적 낭만이 깃들인 풍차부터 찾는 게 하나의 관례로 되었다. 그러나 풍차는 결코 낭만의 산물이 아니다.
국토의 4분의1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의 역사는 「물과의 싸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네덜란드를 「지옥의 입구」라고 했다. 풍차는 바로 물과 싸우는 창이며 방패였다.
그래서 네덜란드에 발을 들여 놓은 많은 사람들은 풍차보다도 바다보다 낮게 뚫린 해안도로며 고속도로 위로 운하가 흐르는 것을 보고 더욱 감동을 받게 된다.
실제로 비오는 날 암스테르담 거리를 걸어보면 웬만한 가랑비에는 우산을 받쳐든 사람이 없다. 노인이나 어린이는 물론 화장을 곱게 한 아가씨들도 태연히 비를 맞고 걷는 것이다.
그들은 어린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수영부터 가르친다. 기초만 익힌 다음 곧바로 실습에 들어가는데 설사 힘이 달리는 어린이가 도중에 물속에서 허우적거린다고 해도 교사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 옆에서 『힘을 내라』고 격려만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은 물이 무섭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 네덜란드에 53년 2월 초속 75m의 강풍이 불어닥쳐 20세기 최대의 해일을 일으켰다. 그래서 간척제방 1백개소를 파괴하고 16만㏊의 토지를 눈깜짝할 사이에 수몰시켜 사망자 1천8백명,난민 72만명을 낸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 대재해가 계기가 되어 네덜란드에서는 「델타계획」이 추진되었다. 북해에 연한 4개의 만구를 가로막아 해안선을 5백60㎞나 단축시킨 거대한 토목사업이다. 결국 그들은 또 한차례 「물과의 싸움」에 도전,승리를 거둔 것이다.
물이란 잘만 사용하면 인간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는 반면,잘못 사용하면 커다란 재앙을 준다. 이번 한강의 대범람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신도시 건설이니 뭐니하고 법석을 떨고 있는 때 한강의 제방은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84년 대홍수때도 범람위기를 맞았던 곳이다. 그러나 당국은 간단한 보수공사로 땜질만 하고 말았다. 신도시 건설의 만분의1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이런 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들 한눈을 팔며 물이 무섭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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