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은 김치 맛 보듯 한국 문화 느껴보라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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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해 3월의 일이다. 홍콩에서 '대장금'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한류 바람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갑자기 반(反)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중국의 국민배우 장궈리(張國立)가 "중국에서 한류 바람이 부는 것은 매국노 같은 언론 탓"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나중엔 홍콩의 액션스타 청룽(成龍)까지 가세했다.

이때 내화(耐火) 소재 생산업체인 청인국제유한공사(靑仁國際有限公司) 이면관(사진) 사장은 홍콩 봉황TV의 시사변론회 PD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류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 한국 측 토론자로 출연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최근 몇 년간 홍콩 한국상공회장을 맡아 일해 온 데다 중국어도 유창한 그였지만 즉답을 못했다. 시사토론회에 나가 본 적이 없는 데다 생방송이라 두려움이 앞섰다. 그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는 사명감 때문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토론회에서 반 한류파로 나온 두 명의 홍콩 논객은 "한류 때문에 중국 전통문화가 위협받는다"며 한국문화 유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이 사장은 '김치론'으로 맞섰다.

"중국인들이 요즘 김치를 좋아한다. 발효식품이라 건강에 좋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지금까지 김치가 중국요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5000년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이 한류를 두려워하고 중국문화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의 김치론은 계속됐다. "국가들끼리 서로 음식을 교류하고 맛보듯 문화도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류는 저속한 문화가 아닌 높은 윤리와 도덕성을 중시하는 문화인데, 어떻게 중국문화를 위협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날 토론은 김치론의 한판승으로 끝났다. 방송 후 네티즌들의 평가도 6대 4 정도로 친 한류 진영의 승리였다. "적절한 비유였다"는 댓글도 수백 개나 올랐다. 이후 이 사장은 한류를 대변하는 논객으로 더 유명해졌다. 지금까지 한국 관련 시사토론회에만 14번이나 출연했을 정도다. 방송에서 그는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논객으로 부상했지만, '한류 전파자'로서의 그의 꿈은 이보다 훨씬 크다. 중국에 '아버지 학교'라는 한류를 전파하는 데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그는 이미 중국 10여 개 도시에서 아버지 학교를 열어 한국인과 중국인 등 2000여 명을 졸업시켰다. "아버지 학교를 통해 중국 가정이 되살아나면 중국인들도 한류가 중국문화의 경쟁자라기보다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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