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막후대화 “일단 수작”/노­연,강­연 무슨 얘기 나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현안 고루 짚고 기분좋은 화답/의견접근부분 「평양결실」 기대
남북 고위회담은 비록 공동합의 발표를 내지는 못했지만 남북간에 걸려 있는 현안에 대해 양측이 충분히 입장표명을 했고 몇가지 문제에 대해선 의견접근을 이뤘다는 점에서 비교적 후하게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평가 못지않게 노태우대통령ㆍ강영훈총리 등 북측 대표단을 만난 우리측 수뇌부가 높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고 북한의 김일성주석 역시 귀환한 북측 대표단을 환대하고 「중대지시」를 내리는등 이례적으로 화답의 제스처를 보여 양측 모두를 기분좋게 하는 막후의 깊숙한 대화내용이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측은 처음부터 공개회의나 대표단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보다는 개별적인 막후대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여러차례 연형묵정무원총리를 막후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첫번째 시도가 북측 대표단이 도착한 날 저녁 힐튼호텔에서 있었던 강영훈총리 주최 만찬에서였다.
우리측 안내원들은 연총리를 만찬장에 안내하기 앞서 미리 강총리가 기다리고 있던 오크룸으로 그를 안내해 강­연 단독면담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같은 갑작스런 시도는 북측의 실력자 림춘길총리책임보좌관(조평통부위원장)과 최봉춘책임연락관을 놀라게 해 이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바람에 「비밀」면담이 아닌 단지 18분간의 특별면담이 이뤄졌다.
림ㆍ최가 몇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 단독면담에서 오간 대화의 주제와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우리측 고위당국자는 『수인사만은 아니었다』며 『고도의 민감한 문제들이 거론됐다』고 귀띔했다.
연총리가 대화를 나누다 막후실력자 림책임보좌관의 얼굴을 자주 쳐다본 것으로 미루어 어느 정도 깊숙한 데가지 언급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작년 소련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마르티노프소장이 방한했을 때 강총리가 북한의 김일성ㆍ김정일 권력승계를 우리가 현실로 보는 대신 우리측이 바라는 민족교류및 자유왕래를 북한이 수용하는 방식의 남북 관계개선을 피력했던 점으로 미루어 이날 개별면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개진이 있지 않았나 관측된다.
○…두번째 막후접촉은 5일 민속공연관람을 위해 워커힐로 오간 승용차안에서 약 40분간 이루어졌다.
승용차안에는 강총리 수행비서 한명만이 동승했었다.
이날 차중 밀담에 대해 강총리 본인은 『단순한 사귐차원의 만남이었다』고 했지만 측근들은 남북 상호간의 체제인정문제를 비롯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들,예컨대 물자교환ㆍ인적 교류 등과 북측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제기한 유엔가입문제ㆍ팀스피리트훈련 중지ㆍ임수경양등 방북자 석방문제에 있어서의 양보가능선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가 솔직하게 오갔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또 남북 양측은 6일 비공개로 열린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표된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적십자회담과 유엔가입문제를 다루기 위한 별도회담 개최외에 의견접근을 본 것이 몇가지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군사직통전화가설,상호비방중지,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등 양측의 제안중 공통되는 부분은 의견이 일치되었으나 북측이 상부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결정을 유보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북측이 내달 평양회담의 성과로 남겨두기 위해 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비공개회담에서 한 북측 대표는 우리 대표에게 『대화는 계속 이어 나갑시다』며 『그러기 위해서 팀스피리트훈련을 당분간이라도 중지해줄 수 없느냐』고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를 하소연에 가깝게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왜 내부문제를 밖으로 끌고 나가느냐』고 표현했지만 북측 대표는 한ㆍ소 수교교섭에 강도높은 불만을 표시하며 「원교근공」의 논리까지 인용하더라는 것이다.
○…남북 실무자간 일련의 막후절충 끝에 이루어진 때문인지 노대통령의 청와대 면담은 매우 정중하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북측은 처음에는 단순히 인사만 하는 예방절차를 고집했지만 나중에는 최봉춘책임연락관을 배석시키는 조건이라면 노­연 개별면담에도 응하겠다고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우리측의 「의전상 주문」을 그대로 수용,「대통령각하」라고 깍듯이 예의를 표했다.
약 15분간의 노­연 개별면담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지만 노대통령이 체제문제와 관련,상호 내정불간섭원칙을 거론하고 우리측이 독일식 흡수통일방식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을 성의있게 설명하고 북측이 수긍,이를 김일성주석에게 전달키로 한 것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
즉 김정일 권력승계문제에 대해 우리측이 객관적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시사를 던지고 경제협력을 위한 몇가지 구체적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북측에서는 우리 정부의 실체인정과 내정불간섭ㆍ테러포기ㆍ핵안전협정 가입용의 표명 등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남북문제의 효율적 해결을 위한 노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희망과 이에대한 북측의 의견이 교환됐을 가능성이 크다.<이규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