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교통요지에 형성된 호서문학 인맥|대전문학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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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빈 대합실에는/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이따금 급행열차가/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지나간다/눈이 오고/비가 오고·…/아득한 선로 위에/없는 듯 있는 듯/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한성기「역」전문).
허허 벌판 한밭을 중부권 중핵도시 대전으로 일군 것은 철도다. 1904년 경부선이 개통된데 이어 1910년 대전 역에서 호남선이 기공되면서 대전은 최대의 교통요지로 떠오르며 그 철도를 따라 8도 사람과 물산 및 인근 공주·부여·강경 등지의 인재들이 몰려 오늘의 직할시를 이루게 됐다.
대전에 서 있는 시비 2 개. 충남 강경 출신 박용내, 함남 정평출신 한성기 시비가 말해주듯 대전은 백제 문화권이면서도 조선 8도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철도가 안겨준「신흥도시」대전문단의 가능성이자 한계로 작용한다.
대전에 문학의 씨를 뿌린 사람으로는 정훈씨를 꼽을 수 있다. 1937년『자오선』창간호에「육월공」을 발표하며 시작활동을 시작한 정씨는 해방 이듬해인 46년 박희선·박용내씨 등과 3인 시동인지『동백』을 창간하면서 대전시단을 형성하게 된다. 비록 프린트판으로 1년6개월 남짓 8호까지 발행됐지만『동백』은 창간동인 3인 외에 원영한 정도석 이재복 성기원 남철우 하유상 민범성 김소운 등 대전은 물론 충남 시인들을 결집시킨 최초의 동인지로 기록된다.
『동백』에서 시작된 대전문단은 1951년 전 장르를 망라한 회원 50여명의「호서문학회」를 결성함으로써 지역 문단으로서의 힘을 과시하게 된다. 이들이 이듬해 창간한 기관지 『호서문학』은 그 필진과 편집 체제에서 볼 때 중앙문단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평이다.
6.25로 인한 혼란과 재정난으로 그후 54년에야『호서문학』2집을 냈던 호서문학회는 급기야 55년「매머드동인」으로서의 덩치를 감당치 못하고 내분현상을 일으켜 박용래 임희재 이재복 권선근 송기영 추식 한성기 손을조 강욱순씨 등 중앙문단 등 단파 또는 등단지지파 등이 따로「한국문학가 협회 충남지부」를 결성함으로써 대전문단이 양분되게 된다.
이런 문단 분열 중에서도 50년대 김대현 박용래 박희선 이교탁 이원구 임강빈 지동환 한성기씨 등이 이 지역에서 시작활동을 펴며 후배들을 길렀고 소설 쪽에서는 최상규씨가 1956년 단편「포인트」와「단면」으로 중앙문단에 데뷔, 현재까지 대전 소설단을 지키고 있다.
5.16혁명 후 한국문학가협회 충남지부가 해체되고 호서문학회도 뿔뿔이 흩어짐에 따라 62년「한국문인 협회 충남지부」가 결성돼 대전문단은 통합을 이뤘다. 그러나 문협 충남지부는 기관지를 70년도 들어서야 내 사실상 문단의 움직임은 없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60년대 시 쪽에서는 최원규 조남익 홍희표 이덕영씨 등이 중앙문단에 데뷔했으며 소설 쪽에서는 김수남씨 등이 나왔다.
한편 황희영 남준우 유동삼 이용호 김해성 임헌도 이교탁 채희석씨 등 이 지역 시조시인들은 65년「청자」를 조직, 시조기반을 다져오다 79년 대전을 주축으로 한 전국적 시조문학회인「가람문학회」의 터전을 닦았다. 현재 회장 임현도씨를 비롯, 38명의 회원을 지닌 가람문학회는 매년 기관지『가람문학』발간과 함께「전국한밭시조백일장」「시조학교」등의 행사를 통해 시조인구의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70년대 들어서는「호서문학회」를 재건하면서부터 속속 동인들이 나와 현재의 동인회 중심의 문단을 열게된다.
73년 향토 아동문학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 한상수 구진서 김영수씨 등이 주축이 돼 결성된「충남아동문학회」는 정만영 회장을 비롯, 현재 회원 40명이며 매년 4회의 회보 및 1회의 기관지『푸른 메아리』발간과 함께 전국 규모의 아동문학세미나도 개최하고있다.
76년 김흥식 이건영 이헌석 지봉성 한성우씨 등 젊은 문인들이 결성한「오늘의 문학회」는 등단·비 등단을 초월해서 현재 전 장르에 걸쳐 회장 이헌석씨를 비롯, 회원 1백여 명을 확보하고 있는 큰 단체. 매년1∼2권의 무크『오늘의 문학』발간과 함께 세미나·합평회 등을 통해 문학수업을 쌓으며 시 낭송회·신인 문학상 공모 등을 열어 문단 저변확대를 꾀하고 있다.
78년 신봉균 김학응 김정수 안명호 지광현 이대영씨 등이 결성한.「시도 동인회」는 현재 회원 50여명에 동인지 40집을 발간, 시 전문 동인의 수나 지령에서 국내 최다를 자랑하고 있다.
같은 해 김용재 박명용 이덕영 이장희 조완호 한병호씨 등 중견시인들로 출발한「백지동인회」도 꾸준히 동인 수를 늘리며 동인지『백지』를 해마다 펴내고 있다.
79년「비 단장에 띄우는 백제의 노래」를 표방하며 발족된「대전 충남수필문학회」는 홍재헌 회장을 비롯, 43명의 회원이 매년 동인지『수필예술』을 발간하고 있다.
한편 80년「경박한 문단풍토에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목소리」를 내세우며 결성된「신인 문학동인회」는 시·소설·평론 등 장르를 망라하면서도 동인은 10여명으로 제한시키면서 알량한 자존심 혹은 고리타분한 권위주의에 빠진 문단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같이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동인운동과 개인들의 창작으로 대전문단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대전 문단의 개화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는 작년 직할시 승격과 함께 충남 문협에서 분리되면서 대전문단이 곧바로 한국문인협회 대전직할시지부(지부장 조남익)와「대전·충남문인 총 연합회」(회장 송백헌)로 크게 양분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대전 문단 형성기부터의 등단·비등단파의 알력, 중앙문예지에 추천권을 쥔 대전중진 문인들의 자파 추천에 의한 파벌조성, 중앙문예지들의 무분별한 데뷔제도 등 온갖 문단 부조리가 대전직할시 문단에서 곪아터지기 직전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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