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족성과「국물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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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물형 음식이 많은 한국의 식단을 들어 우리 국민을 국물민족이라고 한다. 밥에 딸려 언제나 함께 하는 국, 어떤 재료로 만들든 미각을 돋우며 영양을 골고루 갖춘 각종찌개, 물김치 등은 한국 음식의 표상이며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된장찌개·김치찌개·두부찌개 등은 질리지 않는 우리 고유의 반찬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국물반찬은 동양사상의 깊은 곳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말해야 맞는다.
밥상에 오른 찌개의 수용성, 의미 등을 논하려면 한없이 풀어질 것이다. 그것을 몇 마디로 그려보자. 몇 인분의 찌개냐고 물을 때에 두서너 명, 서너덧 명, 일여덟, 열댓 식으로 얼버무려 답해도 통하는 수용력이 대단한 국물반찬이다. 이러한 식단으로 사는 우리의 생활이므로 그 형성된 사고방식도 국물적이라 보아야 맞다. 이런 우리의 국물적 사고방식을 혹자들은 비평하기도 한다.
그 비평의 척도는 아마 서구적 논리의 수치나 셈본식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물원리가 서양식 사고로 비평받을 아무 이유는 없다. 문화는 그 지역, 사람들, 환경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그 자연의 흐름 자체이므로 각자의 상식을 넓히는 가짓수로 보면 되지, 비평의 대상일수는 없다.
국물반찬의 계산법은 우리의 독특한 계산법이다.
높낮이 없는 한 질인 국물반찬, 개별적 신체조건이 상호 작용되며 먹는 찌개, 그 분량과 맛도 어머니의 심층비법으로서 초월적이며 기적적이다. 이것은 인류의 진화선상 첨단지점인 듯하다. 심적 요소의 진한 가미로 첨단 진화된 우리의 특성이 수치계산 셈본원칙론에 밀려서야 될 말인가. 덕에 물들고 눈치가 깃들여 있고 상황판단이 어우러진 우리의 국물원리를 우리말고 누가 이해하겠는가.
여기에 다정다감한 우리의 민족성과 우아한 한국 여성의 밑바탕과 남성의 풍요한 자비의 이유가 밝혀진다. 덕이 결여된 서구식 논리소재를 교육자료로 채택한 학계의 미성숙을 나무라며, 우리의 국물정신을 우리답게 퍼가며 한국을 살아보자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이 원리가 생활화 될 때에 한국 고유의 가족적인 평화가 이루어질 것만 같다. 땅이 좁더라도 나누어 사고 팔며 살고, 만족스럽지 못한 국민을 위한 정치권력도, 얼마 벌어들이지 못한 외화도, 별로 개발하지 못한 물질문명도 국물정신으로 계산하며 국물다운 행복을 누리는 한국형 지상낙원을 이룩해 보자는 말이다. <이기정(가톨릭 서울대 교구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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