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그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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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가지 뜻밖의 일은 이라크에 점령당한 쿠웨이트의 상황이다. 쿠웨이트의 저항군은 이라크에 대한 보복으로 바그다드를 공격한다는 외신이 있었지만 그후 어떻게 되었다는 속보는 아직 없다.
쿠웨이트는 이라크에 점령당하기전까지는 엄연한 입헌군주국으로 13년이나 집권한 임금이 있었고,연 15억5천만달러의 국방비를 쓰는 무기와 2만3천명의 군대,그중 2천2백명의 공군력도 있었다. 탱크가 5백15대요,장갑차가 4백대가 넘었다. 물론 독립된 정부기구로 국방부도 있고,장관도 있었다.
국민소득을 보아도 만만치 않다. 1인당 1만6천달러면 선진국 수준이 되고도 남는다. 1961년에 독립,그동안 30년가까이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나라 행세도 해왔다.
그런 나라가 하루아침에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고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노릇은 누구하나 이라크군에 대항해 총을 제대로 쏘고 저항다운 저항을 했다는 후문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헤럴드 트리뷴지의 현지보도에 따르면 수도인 쿠웨이트시는 오싹하는 정적만 있을 뿐이다.
그 나라엔 그 흔한 애국자도,우국지사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것까지는 몰라도 군인들도 다 도망가기 바빴나.
여기저기 텅빈 집들,불타버린 장갑차와 자동차,점령군의 약탈…. 헤럴드 트리뷴지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들은 인질아닌 인질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다니는 모양이다.
깊은 밤이면 그래도 이라크군을 치고 도망가는 쿠웨이트 저항세력이 있기는 있는가보다. 이라크군이 쳐들어온 날은 쿠웨이트 여성들이 길에 나와 데모도 했다. 그러나 이라크군은 가차없이 총을 쏘아 버렸다. 사망자가 4명,부상자가 15명. 하지만 그 규모로 보면 그것도 대단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한나라의 힘은 국민소득이 높은 것만을 가지고 따질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국력은 국민이 강할 때 강해진다. 쿠웨이트는 국민의 60%이상이 외래인으로 조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없었다. 더구나 정치는 철저한 독재체제로 권력자의 부패와 사치는 국민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의 나라를 무턱대고 쳐들어가는 나라가 나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돈을 물쓰듯 하면서 떵떵거리고 살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저꼴이 되는 것을 보고 누군들 착잡한 심정을 느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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