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문창극칼럼

청와대는 안전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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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386 운동권 간첩사건이 터졌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결국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미사일이 날아도, 북핵이 터져도 한결같이 반미와 자주만을 외치더니…. 이들 뒤에는 북한이 있었다. 지금 조사받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착잡하다. 그들은 북에서 태어나 거기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남쪽에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남과 북을 비교할 지적 능력도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왜 북이 좋았을까. 무엇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을까. 그들 마음을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스스로 북한에 종노릇하기를 자처했을까. 불쌍하다. 젊은 시절 주입된 사상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평생을 그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자녀들은 지금 건강한가. 그 마음과 생각을 누가 붙잡고 있는가. 전교조의 비뚤어진 이념교육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상을 지향한다. 1980년대 억압의 시절에 대학을 다닌 386 세대가 그 시절을 절망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어느 나라에나 좌파는 있게 마련이다. 반항의 세대도 있었다. 미국도 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벌어지면서 대학에 좌파 물결이 휩쓸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독일의 슈뢰더 총리 등이 그 세대들이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 세대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도 부른다. 가장 소중한 시기에 반항에만 몰두하여 지냈기 때문에 나라나 사회가 필요한 시기에 그들을 불러 보니 쓸모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한 세대가 공백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우리의 386 운동권들은 지난 대선을 통해 정치에 출구가 열렸다. 국회.정당.청와대에 몰려 들어갔다. 그들이 나라의 주역이 된 듯했다. 4년이 흘렀다. 지금 남은 것이 무엇인가. 젊은 시절 화염병을 던질 수도 있고 미국 문화원을 점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나라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 이 선을 넘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 북쪽 2500만 명이 굶주리고 고생을 하는 것도 원통한데, 남쪽 4800만 명을 그 구렁텅이에 몰아 넣자는 말인가. 386 운동권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 정도가 아니라 '가롯 유다의 세대'가 되려는가.

이들의 무대는 정치권이었다. 당장 '청와대는 안전한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청와대를 386 운동권 세대가 꽉 잡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혹시 몇 사람이라도 그들과 연계가 있었다면…. 개운하지가 않다. '북핵은 방어용'이라고 대통령은 말했다. '반미 좀 하면 어때'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혹시 청와대의 386들로부터 들은 소리는 아닌지…. 북한은 남쪽에서 미국을 몰아내 우리끼리 통일을 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주장과 이 주장은 무슨 점에서 어떻게 다른지 구별이 안 간다. 유독 나만 이런 의심을 하는 걸까.

정치란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곳이다. 온갖 술수가 동원된다. 그러나 마지막 최후의 선이 있다. 권력이 나라를 앞설 수 없다는 점이다. 나라의 존립에는 여야, 진보-보수가 없다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에서 이것이 허물어졌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이 문제가 정치권으로 넘어가면 곧장 정파 간의 싸움으로 전락한다. 공통의 위기의식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개성 가서 춤을 추는 사태가 나오는 것이다. 권력만 잡으면 나라가 망해도 괜찮은가. 나라가 있어야 권력도 있는데 말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대통령도 나라보다 클 수는 없다. 헌법은 나라를 보위하는 일을 대통령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강조하지만 이 역시 나라를 보위하는 일의 하위에 있다.

국정원장이 교체될 모양이다. 때가 돼서 교체해야 한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386 간첩사건을 지휘했다. 이 사건이 어떻게 확대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왜 하필 이때에 갈아야 하는가. 지금은 오히려 그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나라를 보위하기 위해서다. "청와대까지도 샅샅이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과한 의무이다.

문창극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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