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열며

김정일에 더 비싼 핵 계산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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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지금 평양의 노동당 1호 청사에 앉아 있는 김정일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공산이 크다. 안보리가 평양에 보낸 핵 계산서가 당초 그의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대로 압박하려면 김정일 정권의 생명연장 장치인 연간 50만t에 달하는 중국의 대북 석유와 식량, 그리고 40억 달러에 달하는 대외교역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는 석유.식량에 대한 제한 조항이 없다. 기껏해야 핵.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금융 동결, 헤네시 코냑과 롤렉스 시계 같은 사치품 수출 중단, 화물 검색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 조항들도 '국제법과 국내법 그리고 가능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같은 애매모호한 단서 조항을 곳곳에 붙여 놨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50년간 북한 주민들에게 '미제가 쳐들어온다. 혁명의 수뇌부를 총폭탄 정신으로 보위하자'고 세뇌시켰던 것을 감안하면 유엔 안보리는 김정일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손에 '정권 강화'카드를 쥐여준 셈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아 온 쿠바.이란.리비아.이라크.미얀마 정권은 모두 장수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는 지금이라도 김정일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치를 취해 핵 계산서 가격을 높여야 할 것 같다.

첫째, 한국은 '삼손 옵션(Samson option)'을 갖고 있음을 선언해야 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1970년대 이래 주변국에 적용했던 전략적 선택으로 만일 북한이 핵을 사용할 움직임이 있으면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다. 또 미국과 협의해 91년 한반도에서 철수된 전술 핵무기 재배치를 고려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참여해야 한다.

둘째,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 대응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북한 주민들의 망명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지만 실제로 북한 주민의 망명을 받아들인 것은 스무 명이 채 안 된다. 만일 미국이 향후 3년간 1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을 받아들이겠다고 공개 선언할 경우 평양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흔들릴 소지가 있다. 그동안 북한 인권에 침묵해 온 노무현 정부도 새로운 외교안보팀 발족을 계기로 인권에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 그 존재조차 희미해진 대북 방송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한.미 정보 당국은 현상금을 내걸고 북한의 핵.미사일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양국은 지금 핵.미사일이라는 엄청난 위협에 직면하고 있지만 국정원과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누가, 언제, 어디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외국에서 기술과 부품을 조달했는지 깜깜한 실정이다. 특히 북한의 제2 핵 프로그램인 고농축 우라늄 시설에 대해서는 핵시설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정보 상황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만일 정보 당국이 거액의 현상금을 내건다면 뜻밖의 정보 소득을 올릴 공산이 있다.

최원기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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