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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신공안정국' 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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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7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 민주노동당 당원 및 지지자 수십 명이 몰려왔다. 최근 최기영 당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중앙위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현 상황을 '신공안정국'이라 규정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앞장서서 민노당을 탄압하고 있다"며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된 국정원은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에 사죄하고 관련 공안 기구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는 여론은 물론 당 내부에서조차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경희대 김민전(정치학)교수는 "민노당은 그간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에게 희망과 같은 존재였다"며 "하지만 이번 국보법 위반 사건에 당 인사가 연루된 문제를 놓고 진상규명보다 외부 탓만 하고 있다면 이는 공당으로서의 적절한 처신이 아니며, 더 나아가 국민의 희망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노당 홈페이지에도 당 지도부의 자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정상적 법집행 사건을 두고 그 사람들의 소속 정당에서 '국민께 물의를 빚어 송구스럽습니다'라는 반성은 못할망정 국정원을 용서하지 않겠다니…."(ID 켄타우루스)

"사실상 당의 모든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부총장이 연루된 점이 중요하다. 그가 문제가 있을 경우 '일개 당원'의 문제가 아니라 당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당은 무엇보다 사실관계 확인에 힘쓰고…국가보안법 차원이 아닌 '간첩혐의'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ID 좝파)

한 당직자도 "이번 사건이 당내 친북주의자들이 균형된 시각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솔직히 '신공안정국'이란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민노당은 국회의석 9석의 제도권 정당이자 공당이다. 최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선 20% 가까운 득표로 열린우리당에 앞서기도 했다. 민노당의 이런 시대착오적 인식 혹은 현실불감증은 진보정당의 뿌리내리기를 위해 노력해온 많은 지지자를 허탈하게 할 수 있다. 민노당은 '신공안정국 운운'하기에 앞서 당 관계자들의 연루 사실에 유감 표명이나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