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누가 인터넷에 국경은 없다고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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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인터넷 권력전쟁
(원제Who Controls the Internet?:Illusion of a Borderless World)
잭 골드스미스 외 지음, 송연석 옮김
NEWRUN, 310쪽, 1만5000원

"이 신기술은 누구나 금방 손쉽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정치적 국경을 사실상 지워버릴 것이며, 자유무역을 보편화시킬 것이다 … 더 이상 외국인이란 없으며 우리는 점차 공동의 언어를 채택해 나가게 될 것이다"

이 '신기술'은 무엇일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인터넷 혹은 컴퓨터를 떠올리겠지만 답은 '전보'다. 기술혁명을 이끌 시대의 총아로 등장했다가 일상의 도구가 된 것은 전보만이 아니다. 라디오, TV 등 수두룩하다.

오늘날엔 인터넷이 '국경 없는 세계'(Borderless World)를 만들 것이라 전망이 무성하다. 자본, 상품 및 서비스가 어느 때보다 국경을 자유로 넘나들게 되면서 영토에 기반을 둔 민족국가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리란 근거에서다. 그러나 이책은 '세계화'의 중심축인 인터넷의 한계를 지적한다.

각각 미국 하버드 대와 컬럼비아 대의 법학교수인 지은이들은 "민족국가는 의미가 없어졌다"(니콜라스 네그로폰테)거나 "우리 모두를 옆집 사는 이웃으로 만들고 지역, 거리개념, 언어를 사라지게 할 것"(토마스 프리드먼) 같은 인터넷 만능론을 일축한다. '사이버 자치공간'을 꿈꾼 인터넷 개발자들과 미국 정부와의 갈등, 야후 등 서비스업체와 각국 정부의 줄다리기, 파일 공유 운동을 둘러싼 기업과 네티즌들간의 마찰 등 인터넷 주도권 다툼의 역사를 살핀 후의 결론이다. 이들은 오히려 정부의 강제력이 갖는 근본적 중요성은 변함없고, 인터넷이 동질화를 촉진하기는커녕 '국경 있는 인터넷'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2000년 나치 기념품 판매 사이트를 운영하던 미국의 포털사이트 야후는 프랑스에서 기소당했다. 야후 창립자 제리 양은 "사이트 방문자를 국적에 따라 걸러낼 수 없는데 미국에선 그런 거래가 불법이 아니다"라며 프랑스 법원의 관할권을 거부했지만 결국 문제의 경매사이트를 폐쇄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5년 야후는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민주주의' '대만 독립' 등 공산당 통치에 위협이 될 자료를 걸러내 주는 인터넷 검열기관이 되었다. 지은이들은 이를 인터넷이 속지주의 권력에 무릎을 꿇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인터넷이 세계문화의 동질화를 촉진하리란 전망도 근거가 없단다.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외국인과 교신하거나 외국어 콘텐트에 관심이 적은 일반사용자들은 자신의 지역업무를 위해 그 지역언어로 소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1990년 대 말 인터넷 정보는 80%가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2002년 말에는 그 비율이 50% 미만으로 줄었고 2005년에는 인터넷 사용자의 2/3가 비영어권 사용자라고 한다.

뿐만 아니다. 국내 중개자, 운송, 금융중개자를 통제하는 정부의 힘과 역할은 디지털 세상에도 유효하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쓴, 세계화의 전도사 프리드먼이 '강력한 커뮤니티규범으로 구성된 자치 민족국가'라 치켜세웠던 세계적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가 좋은 예다. 당초 '그리피 아저씨'란 자율적 중재인을 내세워 거래상의 분쟁을 해결하던 이베이는 2005년 현재 온라인 사기 등을 막기 위해 800명에 달하는 상근 보안팀을 고용하고 있다. 온라인의 법체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물리력이 침투한 것이다.

책은 전문적이긴 하지만 흥미있는 일화가 수두룩하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본뜬 '사이버 공간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존 페리 빌로우, 미국 정부로부터 인터넷 네이밍 권한을 빼앗아 오려했던 존 포스텔, 네티즌의 위치를 찾아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시릴 하우리, 북해의 작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세워진 '시랜드 공국'에 데이터 피난처를 만들어 일확천금을 꿈꿨던 라이안 래키 등 다양한 인물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지은이들의 결론은 언뜻 잿빛이다. 정부가 인터넷의 본질적 특징 자체를 바꿀 수 있으며, 미국·중국·유럽이 각자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중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통제력 밖에서 이뤄지는 이 같은 주도권 쟁탈전이 우리에게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뜻깊은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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