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혼선 중심에 '이종석'이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는 이종석
사의를 표명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통일부 장관실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선 24일부터 줄사표가 이어졌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25일 오전 이종석 통일부 장관, 오후엔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의 사의 표명이 있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는 "(외교안보 라인이) 다 바뀌고 저 하나 남으면 공세 타깃은 저일 텐데 정쟁이 지속적으로 가중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침에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힌 직후였다.

이 장관의 말 속에는 자신의 거취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치 공세가 상당히 강해 장관들이 원만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해 이 장관의 말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인 이 장관의 사퇴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국회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부터 이념 편향 논란이 제기될 정도로 그는 정치 공세에 면역이 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을 토대로 이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23일 밤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이튿날인 24일 이 장관은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부담을 드려 죄송하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노 대통령은 "알았다"고 해 사실상 사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10월 3일) 직후에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시 노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점은 이 장관이 왜 그만두겠다고 했느냐보다는 노 대통령이 왜 이 시점에 이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였느냐에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 장관의 사의를 노 대통령이 받아들인 건 문책의 성격도 가미돼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북 핵실험 후 대응 과정에서 외교안보 부처 간 정책 혼선이 불거질 때마다 그 중심에 이 장관이 있었다는 부분이다. 가장 최근에 불거진 '북한 추가 핵실험 유예 논란'이 대표적이다. 주중 대사관의 전문을 놓고 통일부와 외교부가 엇갈린 해석을 하면서 정부는 안 들어도 될 욕을 먹었다. 당시 전문에는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 외에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는데 통일부는 이 전제조건들을 무시한 채 낙관적인 해석으로 일관해 결과적으로 외교부와 엇갈린 대응을 했다. 이 바람에 외교부 내에선 "정보를 통일부에 계속 줘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까지 튀어나왔을 정도다.

상황이 부처 간 혼선으로 비쳐지자 이 장관은 뒤늦게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통일부가 의도적으로 부풀린 게 아니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여권 안팎에서까지 이 장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으로 연결됐다.

결과적으로 야당의 문책 공세가 계속되는 상황과 맞물려 노 대통령도 외교안보 부처 간의 팀워크를 감안해 이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이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책 혼선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이 장관 해임 건의안이라도 내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대통령이 안아야 한다"고 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박승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