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를 표명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통일부 장관실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 장관의 말 속에는 자신의 거취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치 공세가 상당히 강해 장관들이 원만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해 이 장관의 말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인 이 장관의 사퇴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국회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부터 이념 편향 논란이 제기될 정도로 그는 정치 공세에 면역이 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을 토대로 이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23일 밤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이튿날인 24일 이 장관은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부담을 드려 죄송하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노 대통령은 "알았다"고 해 사실상 사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10월 3일) 직후에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시 노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점은 이 장관이 왜 그만두겠다고 했느냐보다는 노 대통령이 왜 이 시점에 이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였느냐에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 장관의 사의를 노 대통령이 받아들인 건 문책의 성격도 가미돼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북 핵실험 후 대응 과정에서 외교안보 부처 간 정책 혼선이 불거질 때마다 그 중심에 이 장관이 있었다는 부분이다. 가장 최근에 불거진 '북한 추가 핵실험 유예 논란'이 대표적이다. 주중 대사관의 전문을 놓고 통일부와 외교부가 엇갈린 해석을 하면서 정부는 안 들어도 될 욕을 먹었다. 당시 전문에는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 외에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는데 통일부는 이 전제조건들을 무시한 채 낙관적인 해석으로 일관해 결과적으로 외교부와 엇갈린 대응을 했다. 이 바람에 외교부 내에선 "정보를 통일부에 계속 줘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까지 튀어나왔을 정도다.
상황이 부처 간 혼선으로 비쳐지자 이 장관은 뒤늦게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통일부가 의도적으로 부풀린 게 아니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여권 안팎에서까지 이 장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으로 연결됐다.
결과적으로 야당의 문책 공세가 계속되는 상황과 맞물려 노 대통령도 외교안보 부처 간의 팀워크를 감안해 이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이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책 혼선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이 장관 해임 건의안이라도 내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대통령이 안아야 한다"고 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박승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