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거방북」 충격 꺼렸다/신청자 명단 왜 안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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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민련ㆍ전대협등은 일방 초청 가능성/성사 고려않고 기대키운 정부도 책임
북한이 9일 우리측이 제의한 민족대교류기간중 방북신청자 명단인수를 정면으로 거부함으로써 북에 두고온 가족들을 만나보겠다는 이산가족의 꿈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북한측이 대대적인 선전공세를 펴온 판문점 범민족대회는 물론 통일염원미사를 올리기 위한 정의구현사제단의 평양방문과 북측이 제의한 임수경양 위문단 방한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북한이 방북하기를 원하는 전민련이나 민중당,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15명의 명단도 이번 방북신청자명단에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방북신청자명단 수령은 거부했지만 전민련ㆍ전대협ㆍ민중당 등에 대해서는 추후 방송등을 통해 일방적으로 초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측이 명단인수를 거부하면서 보안법철폐를 다시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만의 하나 우리 정부가 임양 면회와 전민련ㆍ전대협의 범민족대회 참가를 전격적으로 허용할 경우 우리 주민들의 북한방문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아예 우리정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또 명단을 건네 받는 것 자체가 민족대교류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될 수 있고 전민련등 특정단체들의 선별초청마저도 거부한 것은 이들 단체들이 대거 북한에 들어갈 경우 철저한 통제와 보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평축기간중 임수경양이 「위대하신 김일성 주석께서 친히 하사하신 스카프」를 내팽개치는등 일련의 자유분방한 행동들이 그들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다. 개방은 곧 정권붕괴라는 북한지도부의 강박관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북한이 오는 9월4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합의한 남북고위급회담마저 거부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고위급대화를 거부할 경우 오는 9월에 개최되는 UN총회에서 남한단독가입을 저지할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일련의 개방공세에서 우리 정부가 반성해야 할 문제점도 적지않다. 전민련등 특정단체만의 평양방문과 판문점 범민족대회 참석에 관해 정부의 방침이 왔다갔다 한 것은 물론,북한이 거부할 것을 예상하고도 온 국민을 상대로 방북신청을 받아 무책임한 기대감만 부풀려 놓았기 때문이다.
가족재회ㆍ고향방문의 꿈을 갖고 방북을 신청한 6만명이 넘는 실향민이나 이 교류의 성사를 진심으로 희망한 국민들에겐 이와 같은 정부의 성급한 조치는 정부의 권위와 신뢰성을 크게 깎아 내리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정부가 뒤늦게 이들에게 북측의 거부등 해명서한등을 보내기로 했다지만 남북문제를 국내정치의 돌파수단이나 남북간의 경쟁적 선전수단에 이용하려한다는 인상을 주지않으려면 정부가 보다 면밀한 사전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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