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결의 동참” 힘든 선택/정부,이라크제재 결정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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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의 채근에 「신중대처」서 전환/경제 손실보다 교민안전 걱정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지 7일이 되는 9일 우리 정부는 ▲원유수입 금지 ▲수출ㆍ수입 금지 및 ▲건설공사를 수주하지 않기로 하는등 뒤늦게 대 이라크 제재조치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정부는 이라크 제재조치 동참의 명분으로 지역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이와 유사한 사태가 우리에게 발생했을때에 대비,무력을 사용해 약소국가를 침공ㆍ점령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기본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는 것을 첫째로 꼽고 있다.
또 미소를 비롯,영ㆍ불ㆍEC 등 세계 주요국가들과 유엔이 이라크를 제재키로 한 만큼 우리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는 책임론을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가 이같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선뜻 제재조치에 동참하지 못하고 상당한 시일을 끈 데는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직후 영ㆍ불ㆍEC 등과 함께 경제제재조치를 가한데 이어 지난 6일 유엔안보리의 결의가 있기전부터 우방인 우리 정부에 동참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로부터 즉각 철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했을뿐 정작 제재조치동참에 있어서는 양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신중히 대처하겠다며 시간을 끌어왔던게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이라크 제재조치에 동참을 주저했던 이유는 원유공급ㆍ건설공사등 경제관계 때문에 아랍의 전체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고 더군다나 쿠웨이트와 이라크내에 1천3백27명에 달하는 우리 교민이 현재 거주하고 있어 정부의 결정을 어렵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말해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제재한다고 나설 경우 이라크를 자극,교민들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우려가 있으며 그렇다고 지나치게 시간을 끌수도 없어 국제적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린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종하 외무차관이 이라크 제재동참을 발표하면서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은 규범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회원국은 물론 비회원국도 유엔과 공동입장을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맥락에서 우리 정부도 안보리결의안에 동참키로 했다』는 배경설명이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7일 방한한 솔로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가 우리 정부를 거듭 채근한데 이어 케야르 유엔사무총장도 8일밤 최호중 외무장관 앞으로 유엔안보리결의안을 타전해오는등 상당한 외압이 작용,언제까지나 「신중한 자세」만을 견지할 수만은 없었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는 실토하고 있다.
또 정부가 동참결정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8일밤 미국이 사우디에 군대를 파병키로 결정하고 유럽국가들이 다국적 군대를 구성함으로써 이라크­쿠웨이트 사태가 미국등 서방측 주도로 처리될 것이라는 분석도 동참을 결정하는데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제재조치로 인해 우리나라는 다소간의 손실은 불가피하지만 그다지 심각할 정도의 피해는 아니다.
사실 정부가 취한 제재조치중 원유수입금지 및 상품교역금지조치는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송유관 봉쇄 및 육로ㆍ해상봉쇄로 인해 원유수입과 상품교역이 실질적으로 중단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만으로 따져볼 때 제재를 하거나 하지않거나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건설공사 수주 금지조치가 걸리는 대목인데 현재 이들 두나라에 대한 건설수주액은 이라크가 8억4천만달러,쿠웨이트가 2억달러,미수금은 이라크가 5억5천만달러,쿠웨이트가 1억7천만달러 가량이어서 이라크에 대한 채무는 손실을 감수해야할 형편이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적 손실은 이라크의 군사행동이나 쿠웨이트병합에 대한 전체 아랍권의 반발,소련까지도 참여하는 대 이라크 제재의 명분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1천3백여명의 교민안전문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대응조치가 시작될 경우 이라크로서는 이들이 마음놓고 공략할 수 없도록 미ㆍ영ㆍ불등 서방국 외국인들을 비롯해 이라크제재에 가담한 우리교민까지도 인질로 잡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정부당국자들은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라크정부가 우리 교민만을 특별히 보호해줄리 없기 때문에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수천명의 자국교민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ㆍ영국ㆍ일본ㆍ프랑스등과 같이 공동보조를 취해가며 우리 교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구출을 꾀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4천3백명의 자국민을 두고 있는 미국이나 3천명의 자국민이 거주하고 있는 영국등 서방국가들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취하기까지는 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서방국가가 자국민 보호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정부도 교민들에 대한 안전조치를 강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당국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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