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작 연극무대서 '갈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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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저녁 일본 도쿄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홀.

작품성과 예술성이 인정되는 작품만 공연되는 것으로 유명한 이 공연장에 가득 들어찬 일본인 관객 400여 명은 막이 내려도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제작한 연극 '고래섬'은 새끼를 밴 어미 고래를 죽인 포경선 어부 가족의 업보와 불로초가 자라는 섬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탐욕이 얽혀 전개되는 작품이다.

연극을 보노라면 독도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떠오르기도 한다. 양국의 배우 다섯 명이 각각 출연해 동족과 서족으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이 순탄치 않은 한일 관계와도 닮았다. 다소 딱딱한 스토리지만 관객들을 아름다운 멜로디와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분위기를 만든 주인공은 나자명(38.사진)씨.

나씨는 극의 중심이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해령(海靈)역을 맡으면서 뮤지컬 배우 출신답게 호소력 넘치는 7곡의 노래를 선보여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는 "한국과 일본 국민에게 '다른 사람을 눈물나게 하면 나중에 본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는 메시지와 고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연을 파괴하면 결국 그 폐해는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인류의 공동가치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을 통해 양 국민 간 이해를 증진시키는 촉매제가 됐으면 더 바랄 바가 없겠다고도 했다.

나씨는 1988년 극단 가교에서 뮤지컬 '환타스틱'의 여주인공 루이자 역으로 데뷰한 이후 일본으로 건너와 쇼와 음악예술단과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일본 진출 1호 연극인'이다. 아담한 체구지만 폭발적인 성량으로 일본 내에선 '작은 거인'으로 불리며 고정 팬들도 많다.

내년 3.1절에는 꽃과 촛불 퍼포먼스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을 달래고, 4월에는 인디언 여성들의 고난의 삶을 묘사한 '레즈 시스터즈(인디언 보호구역의 자매들)'을 제작, 출연하기로 되어있다.

나씨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통해 한국과 일본, 나아가 전세계 국민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연극인으로서의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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