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제3국' 직항 땐 검색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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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선박에 대한 해상 검문검색을 놓고 한.미 간의 갈등이 증폭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핵심은 미국 주도로 실시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문제다. 미국 측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한 시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사실상 주문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남북 해운합의서를 활용해 PSI를 대체하겠다는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효된 해운합의서에 북한 선박에 대한 해상 검색 규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해운합의서로도 통제가 가능한 만큼 추가로 PSI 참여를 확대할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라이스 국무장관은 19일 방한 시 "한국 내에 해운합의서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제한 뒤 "(한국은) PSI를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해운합의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PSI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문제는 해운합의서를 활용해도 미측이 기대하는 해상 검문검색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다.

해운합의서는 외견상 유엔 해양법보다 금지 조항이 더 넓다. 유엔 해양법상 해상 검색 요건은 노예 운반 등 다섯 가지인데, 무기 수송은 제외돼 있다. 하지만 해운합의서는 군사 활동, 무기 수송 등 10대 금지 항목을 규정했다. 의심 선박은 정선.검색할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 수송 선박의 해상 검문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합의서에 따르면 또 정선.검색 구역을 '영해'가 아닌 '상대 측 해역의 지정 항로'로 규정해 의심 선박을 공해상에서도 정선.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해운합의서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합의서는 남북을 오가거나 북한에서 제주해협 등을 거쳐 북한으로 가는 선박, 남북을 거쳐 제3국으로 가는 선박만을 대상으로 한다. 북한을 떠나 동남아로 이동하던 도중 23일 홍콩에서 억류된 강남 1호처럼 북한에서 제3국으로 곧바로 빠져나가는 선박은 애초부터 검색이 불가능하다. 합의서는 또 북한 선박에서 의심 물자를 발견해도 이를 압류.나포할 수 없다. 관할 해역 바깥으로 추방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허점들을 감안해 미국은 우리 측에 해운합의서 차원 이상의 PSI 참여를 주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양법 전문가인 자유기업원의 이춘근 부원장은 "해운합의서의 이런 맹점 때문에 정부가 해운합의서로 PSI 참여 확대를 대체하겠다고 할 경우 미측은 이를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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