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돈 41억 빌려 보너스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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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재단법인 한국철도기술공사 이사진이 민영화 과정에서 100억원대에 이르는 재단의 자산을 고의로 축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모 당시 이사장을 포함한 재단 이사 7명과 400여 명의 직원들은 자신들이 전액 출자해 새로운 회사를 만든 뒤 장부상 자산이 대폭 줄어든 재단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인수했다. 감사원은 철도기술공사와 이를 감독해야 하는 철도청(현 철도공사)에 대한 감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당시 법인 이사 7명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24일 밝혔다.

◆ 재산 줄이기=철도기술공사는 철도 관련 설계와 감리 용역을 주로 수행하는 재단법인이었다. 매년 300억원 이상의 매출과 10억원 안팎의 순이익을 내는 알짜 회사였다. 2003년 말 결산 당시 자산은 195억원, 부채는 46억원이었다.

그런데 민영화를 위해 재단법인의 해산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인 2004년 8월 재단의 자산은 115억원으로 줄고, 부채는 10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전년에는 11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그해 9월 말에는 4억원의 적자 상태였다. 이사들이 민영화 직전 재단의 자산은 줄이고 빚은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신 전 이사장과 이사진은 자신들이 전액 출자한 회사를 통해 재단을 손쉽게 인수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청산되는 법인의 재산을 인수하는 회사는 자산과 부채의 차액만큼을 법인에 돌려줘야 한다. 이 돈은 나중에 국고에 귀속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자신들이 세운 회사가 내야 할 돈을 줄이기 위해 장부상 가치를 축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23억원으로 수백억원짜리 회사 꿀꺽"=이사진은 재단의 자산 가치를 줄이기 위해 온갖 불법과 탈법 행위들을 동원했다.

우선 그해 6월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은행에서 41억원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철도청에는 직원에게 월급 줄 돈이 없다고 대출 이유를 보고했다. 그러나 재단 임직원들은 대출금에 재단이 갖고 있던 현금까지 더해 49억7600만원을 특별상여금 형식으로 나눠 가졌다. 이사들은 평균 3900만원, 직원들은 900여만원씩을 받아 챙겼다.

부동산도 감정 가격을 무시한 채 공시지가로 평가해 12억3000만원을 줄였다. 설계.감리를 해주고 받지 못한 용역 대금 53건 중 30건(23억여원)은 장부에서 누락했다. 건설공사 수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특허와 면허, 그동안의 용역 수행 실적 같은 무형 자산은 아예 계산에서 뺐다. 현금으로 지급해야 할 퇴직금은 퇴직적립금 항목을 만들어 부채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하고도 남은 5억9000만원은 '공익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단서를 달아 자신들이 세운 회사에 기부해 버렸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그나마 새로 만든 회사의 자본금 40억원 중 17억원은 재단이 대출받아 나눠준 특별상여금으로 납입됐다"며 "결국 경영권까지 포함한 가치가 700억원이 넘는 재단을 23억원에 인수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또 "철도청이 제대로 감독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감사 결과에는 이 내용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 담당자들이 퇴직해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철도청 관계자들이 공모 또는 묵인한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면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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