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냐 마느냐"-국산 핵연료-관련 부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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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 나라가 야심적으로 개발한 국산 핵연료의 사용을 둘러싸고 정부 각 부처간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핵연료 국산화에 직접 참여한 과기처는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생각해 국산 핵연료의 적극 사용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동자부·감사원 등은 현재는 값이 싼 외국산을 수입해 쓰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같은 갈등의 원인 중 하나는 국산 기술의 장기적 파급 효과보다는 경제적 측면만 강조해 온 임부 경제 관료들의 시각 때문이라고 과학 기술계는 보고 있다.
동자부·한전·감사원 등은 최근 한국 원자력 연구소 팀이 개발한 국산 핵연료가 현재는 가격이 비싸므로 우선은 가격이 싼 외국산 핵연료를 수입해 쓰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시비가 지속되자 개발에 참여했던 원자력연 연구원들은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생각지 않고 애써 개발한 첨단 기술을 사장시키는 발상』이라며 성명서 발표와 함께 탄원서 제출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는 현재 9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으며 여기에 소요되는 핵연료는 연간 중수노용 1백t, 경수노용 2백t이다.
그동안은 이를 전부 외국에서 수입해 왔으나 원자력연과 한국 핵연료 (주)가 지난 5년간 국산화를 추진, 현재 전량 국산으로 공급되고 있다.
국산 핵연료가 국제 가격에 비해 비싼 것은 사실이다. 89∼91년 소요핵 연료에 대해 한전과 체결한 국소 핵연료 가격 (성형가공비)은-우라늄 kg당 3백46달러로. 국제가격 2백50달러에 비하면 약 40%나 비싼 셈이다.
이에 대해 핵연료 국산화에 참여했던 한국 원자력연 김시환 박사 (경수로 핵연료 사업부장)는 『핵연료 국제 가격은 우리가 핵연료 국산화를 거의 마무리해갈 무렵 웨스팅하우스사가 제시한 덤핑 가격』이라며 『만약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같은 낮은 가격을 제시할 리가 없었을 것이며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덤핑 시세는 전자나 정밀 화학 제품에서도 흔히 겪어온 일로 실제로 국산화가 안돼 있는 대만은 3백 달러 선에 사다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자력연의 노병철 실장 (핵연료 사업 운영실)은 『미국 등 구미 각국은 연산 7백∼1천7백t으로 시설 규모가 크고 이미 투자 비율 대부분 회수된 상태기 때문에 이같은 낮은 가격제시가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우리도 초기 투자비 상각이 끝나는 95년부터는 국제 최저가인 2백50달러 이하에서도 공급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소의 한필순 소장은 『핵연료는 국가 전략 물자인 에너지 자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강조하고 『4∼5년을 참지 못하고 당장 비싸다고 외국 것을 사다 쓰자는 주장은 에너지 종속화를 의미하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의 경우 오래 전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면서도 우리보다 훨씬 비싼 6백10달러에 공급하고 있다.
김시환 박사는 『선진국에서는 5∼7년을 주기로 보다 효율이 높은 개량핵 연료를 개발하고 있다』고 전하고 『만약 자체 기술이 확보돼 있지 않으면 매번 바뀌는 핵연료를 비싼 값에 수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우리도 95년부터는 연소도를 13%정도 향상시킨 개량 핵연료를 공급한다는 목표로 8월부터 96년까지 55억원을 투입해 연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될 경우 연간 약 1백50억원의 핵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전은 곧 실시할 92∼93년분 핵연료 공급 계약에 3백10∼3백20달러를 제시한다는 방침이어서 핵연료 가격을 둘러싼 경제성 시비가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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