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한 핵실험 후의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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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핵심적인 문제는 북.미 양국이 핵문제를 협상과 타협으로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결단을 내릴 때 북한 핵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북.미 어느 쪽도 가까운 장래에 그런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미국은 안보리 결의에 규정된 제재조치의 실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국제 금융제재의 확대,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한 추가 제재 등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할 것이다. 선제 공격과 같은 무력행사는 하지 않더라도 북한 정권의 교체까지 시야에 넣고 대북 봉쇄와 고립화 정책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북한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미국과 안보리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며 6자회담에 조기 복귀하고 6자 및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9.19 공동성명의 실천에 진전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핵실험으로 핵 보유국임을 증명하고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비핵화 및 핵군축을 토의하는 회담에 참여한다는 명분을 내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또 하나의 옵션은 조건부 회담 복귀라는 종래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회담 참석을 거부하고 계속 핵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는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 미국의 적대정책 전환, 북.미 양자회담에서의 타결 선행, 안보리 제재 해제 등을 제시할 것이다. 또 만일 6자회담에 나오더라도 미국의 양보가 불충분하면 시간 벌기 작전을 써 부시 정부와의 최종 타결을 거부하고 차기 정부 출범까지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며 기다린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며칠 전 방북한 중국 탕자쉬안 특사는 북한의 조건부 6자회담 참석 용의를 확인했다고 한다. 조건은 금융제재 해제와 양자회담이었다고 한다. 또 추가 핵실험 계획이 없다는 발언의 진위를 놓고 여러 추측 보도가 있었다.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한 핵실험의 시한적 동결은 몰라도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조건 없이 쉽게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결국 탕 특사의 설득 작업도 북한의 기본적 정책 전환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판단이 내려질 것 같다. 미국의 무력공격이 확실시되는 긴박한 상황이나 중국이 북한의 생존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제재를 가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북한의 정책 전환은 없을 것이라는 게 미국 내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이다.

세 번째 옵션은 유엔 결의를 전면 거부하며 물리적 조치를 포함한 강경 대응을 하는 것이다. 북한의 강경 조치로는 ▶추가 핵실험 ▶미사일 추가 발사 ▶한국 또는 일본 내 미군 시설에 대한 파괴 활동(재한.재일 친북 세력을 이용한) ▶한국에 대한 국지적 도발 또는 전면적 공격 ▶남북한 통일전선 강화와 반미.반일 운동 전개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 선언, 평화 협정, 연방제 수립 등 극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 미국을 견제 ▶반미 국가나 테러 집단에 대량살상무기 이전 등이 있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엔 결의에 의거한 제재 집행 과정에서 북한과의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이 전면적인 교전 상태로 확대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세 가지 선택지 중 북한은 두 번째 옵션을 추구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로 인한 북한의 불이익이 너무나 크다고 판단하면 첫 번째 옵션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을 위해서나 관련국들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이 하루빨리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김영진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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