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구멍 뚫린 '과학 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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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과학기술부가 북한 핵실험 이후 '핵실험에서 주로 나타나는 방사능 핵종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연일 내고 이에 관한 보도가 나간 지난 주말. 몇몇 핵 전문가가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또 과기부 발표를 그대로 보도한 언론에 대한 비판도 했다. 자기반성은 이랬다. 우리나라는 북 핵실험 때 나온 방사능을 잡을 기술도, 장비도 없는데 지금까지 그런 것을 개발하지 못해 원자력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고 했다. 정부의 연구비 배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어찌됐든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언론에 대한 질타는 이랬다. 핵실험 여부를 판별하는 능력이 우리나라에 있는지 없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기자들이 과기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만 '앵무새처럼' 보도해 상당수 국민이 '우리 정부가 그런 방사능을 포착할 능력이 있는데 바람도 남쪽으로 안 불고, 비도 오지 않아 못 잡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원자력 전문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장순흥 부총장은 이번 핵실험 때 나온 방사능 물질을 1g 정도로 추정했다. 함북 길주군에서 1g이 공중으로 퍼진다고 생각해 보자. 그 흔적을 잡는 것은 과기부가 내놓은 환경방사선측정망으로는 턱도 없다. 핵 전문가라면 이런 내용은 상식에 속한다는 것이다. 신원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의 대답은 기자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기자가 '핵실험으로 나오는 핵종 검출 및 공기 포집 기술을 어느 수준까지 개발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연구한 것은 없으나 크게 뛰어난 기술은 아니다. 2년만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고 답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아직 개발하지 않고 있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기술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방사능 포집.분석 기술을 개발하고 안 하고는 정책 입안자들이 결정할 사항이다. 과기부는 핵실험 뒤 방사능을 탐지하기 위해 북한에서 불어오는 공기를 채집하는 장비를 스웨덴에서 들여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장비를 외국에서 들여올 생각인지, 또 그렇게 하면 국민은 안심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정책 담당자에게 묻고 싶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