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능력(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영국 의회엔 연설이 없다. 토론과 질문과 답변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미리 써가지고 나온 원고를 힐끗 힐끗보며 목을 빼고 청산유수로 떠들어대는 식이 아니다.
원고없는 발언을 원칙으로 하는 것은 정치의 성실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각본대로 하는 정치는 질색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의원이나 장관의 경우 토론능력(debating faculty)을 첫째 자격요건으로 친다. 토론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의정단상에 서는 것은 영국에선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의원들의 발언엔 또다른 원칙도 있다. 간단,명료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회의장에서 의원을 부를 때는 이름은 빼고 『명예와 학식을 갖춘 (honorable and learned) 어느 선거구 출신』이라고 말한다. 입에 발린 말같지만 꾹 참고 그런 것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 본고장의 전통이다.
하지만 영국 국회의원이라고 성인군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육담도 나온다. 이런 경우는 예외없이 「비의회적(언팔러멘터리) 포현」 조항에 걸린다. 징계사유가 되는 것이다. 거짓말,거짓말쟁이,놈(가이,펠로우),개,돼지 등과 같은 말은 금물중에 금물이다.
처칠은 의회토론중에 야당이 와글대면 지그시 눈을 감고 『가마솥밑에서 가시덩굴이 타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소이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에게 심한 핀잔을 줄 때도 이처럼 성경말씀(구약)을 꾸어다 댔다.
혹시 누가 비의회적인 발언을 했다가 취소하는 경우 우리나라는 속기록에서 자동으로 빠진다. 영국 의회는 그렇지 않다. 비의회적인 발언도 그대로 적어놓고 나중에 취소했다는 말도 함께 적는다. 아무개가 이런 품위없는 발언을 했었다는 기록을 남겨 놓은 것도 교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영국의 의회정치를 「콘도미니엄」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영문인가. 부동산 얘기인가 하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공동의 정치」라는 의미다.
자,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나라 국회얘기나 하며 부러워하고 있어야 하는가. 국회의원 나리들은 「외유」만 하지 말고 「견학」도 좀 하면 어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