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시인 애끓는 사부곡 "백혈병 아내 죽으면 절필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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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1번 침대에 누워/그녀는 깊이 잠들었다/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개월째/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너의 피를 먹고 자란 시인, 더는 늙어서/ 피 한방울 줄 수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시를 쓰는구나' (송수권의 시 '연엽에게' 중에서)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아내에 대한 송수권(63.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인의 애끊는 사부곡(思婦曲)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터넷뉴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송씨는 "만일 아내가 죽는다면 난 다시는 부질없는 시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때도 시를 쓴다면 도끼로 나의 손가락을 찍어버릴 것이다"라며 처절한 절필 선언을 했다.

송씨의 아내 김연엽(52)씨는 지난 몇개월새 남의 피를 수혈받으며 고통에 시름하고 있다. 젊은날부터 같이 고생해 온 아내이기에 송씨의 아픔은 더욱더 클 수밖에 없다. 그는 시인으로 등단한 후에도 섬과 산골 등 벽지학교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경제 관념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아내인 김씨가 수박 농사를 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송씨가 순천대 문예창작과에 출강한 후로도 아내는 보험회사에서 돈을 벌어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어려운 살림에 송씨가 시를 쓸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준 아내의 부재는 그에겐 '시와의 결별'보다 더한 고통일 것이다. 송씨는 아내의 수술 결과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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