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변화냐 선전이냐/조평통 판문점 개방 발표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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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ㆍ민간인 접촉 병행 포석/김일성 5개 제안 후속조치 다 나온 셈
북한은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위원장 허담) 명의로 통일문제등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과 해외의 정당ㆍ단체ㆍ각계층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환영하며 이에 상응하여 한국의 정당ㆍ단체등의 북한인사들을 초청할 경우 장소나 시일에 관계없이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한측은 이를위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의 북한측 지역을 오는 8월15일부터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여러 이유를 들어 남북대화조차 거절해왔던 북한이 지난 6월20일 대화재개를 선언하고 이번에 이같은 조치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데는 북한측의 「고도화된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측이 오는 8월 「남북 고위급회담」을 합의해 놓은 상황에서 다시금 종전 그들의 기조대로 「정당ㆍ사회단체 각계각층」간의 대화를 재차 강조하고 나선 것은 우리측이 내세웠던 정부 당국자간의 대화를 교란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금년들어 북한이 내놓은 일련의 제안들은 그들 나름대로는 맥을 가지고 있다.
즉 김일성이 지난 5월24일 최고인민회의 9기 1차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밝힌 「조국통일 5개방침」에 의거해 일련의 세부실행지침을 발표한 것이다.
이번에 제의한 정당ㆍ사회단체의 상호왕래와 판문점개방은 「5개방침」의 두번째 항목인 「자유왕래ㆍ전면개방」의 후속조치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지난 5월31일 새 「군축제안」을 내놓은 것은 이 「5개방침」중 「긴장완화ㆍ평화환경마련」과 관련해서 나왔고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조성항목」과 관련해서는 「단일의석에 의한 유엔공동가입」안이 나왔다.
또 「통일을 위한 대화발전」 항목과 관련해서는 지난 6월20일 대화재개 의사를 표명해와 결과적으로 8월에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전민족적 통일전선」 항목과 관련해 6월4일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우리측에 제안해온 바 있어 이번 판문점개방으로 사실상 5개항의 「후속조치」가 드러난 셈이다.
이같은 「5개 방침」에 따른 후속조치는 북한의 대남정책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파상적인 대남제의로 남한의 대응에 혼란을 야기시키고자하는 전술적 측면도 깔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이번 판문점 개방선언은 북한측이 오는 8월15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한 「범민족대회」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이 대회를 이용해 남한내부의 통일운동을 고양(?)시키려는 의도를 깔고 있으며 이는 「자유왕래ㆍ전면개방」이라는 명목상의 취지를 넘어서 남한내에 「통일전선」을 형성하고자 하는 종래의 의지를 포기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이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당국과의 협상도 중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조평통이 이같은 성명을 발표하는 거의 같은 시간에 북한의 정부ㆍ정당및 단체 대표들은 또다른 공동성명을 통해 「남북 고위급회담」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있는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북측은 이 성명에서 김일성이 금년 신년사에서 이미 「남북 고위급당국및 정당수뇌협상회의」 제안을 내놓았음을 상기시키고 「고위급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일련의 움직임은 앞으로 정부당국자간의 대화와 함께 자기들이 중요시 여기는 정당ㆍ사회단체들간의 대화도 병행시켜 나가겠다는 복선이 깔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같은 양면전략에 맞서 북한을 대화의 자리에 계속 나오게 하면서 그들의 「선전」적인 제의를 어떻게 수용할지 고심하고 있는 눈치다.
남북문제에 관해 이제 북한측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다 나온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제안을 받아 우리측이 어떻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인가가 주목된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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