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한국시리즈] 이것이 야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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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자, 지금부터야."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거둔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라는 영광스러운 닉네임을 얻었다. 그때 군산상고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의 제목이 '자, 지금부터야'였다.

31년이 지난 2003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SK가 또 한번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외쳤다. 바로 군산의 후예 이진영(23)의 결승 2점홈런과 채병용(21)의 호투를 앞세워서다.

SK는 24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 현대를 2-0으로 완파하고 3승3패로 균형을 이뤄 25일 7차전에서 마지막 승부를 겨루게 됐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99년 프로에 입단한 이진영은 3회말 1사 2루에서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결승 2점홈런을 때렸다. 볼카운트 2-1에서 현대 선발 전준호의 포크볼을 시원스레 걷어올린 이진영은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한 듯 두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진영의 홈런은 자신의 약점인 몸쪽 낮은 공으로 공략하는 상대의 수를 꿰뚫은 뚝심의 결과였다.

3차전에서도 김수경의 몸쪽 낮은 슬라이더를 받아쳐 홈런을 때렸고, 이날도 역시 몸쪽 낮은 포크볼을 걷어올린 것이다. 군산중 3학년 때 서울 신월중으로 전학한 채병용은 3차전 승리에 이어 6차전에서도 승리를 이끌어 벼랑에 몰렸던 팀을 구해냈다.

현대 타선은 채병용의 공격적인 투구와 변화무쌍한 볼배합에 속수무책이었다. 채병용은 7과3분의1이닝 동안 현대 타선을 단 4안타.무실점으로 꽁꽁 묶었다. 6차전을 앞두고 "채병용에게 두번 당하지 않겠다.

변화구 위주의 패턴에 충분한 준비를 해서 무너뜨리겠다"고 했던 현대 김재박 감독도 투구 패턴을 바꾸지 않고 더 정교한 변화구로 밀어붙인 채병용을 공략하지 못했다. 피하기보다 정면승부를 택한 이들의 자신감은 늦가을 밤을 훈훈하게 달궜다.

현대는 4회와 6회 무사 1루의 찬스에서 병살타와 번트 실패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8회초에는 구원으로 투입된 이승호를 공략해 1사 1, 2루의 찬스를 잡았으나 정성훈이 SK의 철벽 마무리 조웅천을 상대로 또 유격수 앞 병살타를 때려 추격이 무산됐다.

이제 단 한번의 승부에서 챔피언이 가려진다. 한국시리즈가 7차전에서 판가름이 난 것은 역대 세번밖에 없다. 84년 롯데, 95년 OB, 2000년 현대가 각각 4승3패로 정상에 올랐다.

이태일.성호준.김종문 기자

*** 양팀감독 한마디

▶SK 조범현 감독=승리에 대한 우리 선수들의 집중력과 집념이 뛰어났다. 하나로 뭉쳐있는 팀워크는 어디가서도 자랑하고 싶을 정도다. 김원형을 7차전 선발로 기용한 것은 현대 타자들이 시즌 중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 김재박 감독=채병용을 두번이나 공략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다. 변화구 제구력이 좋았고, 대담한 승부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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