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병목현상」/최철주 경제부장(데스크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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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봄부터 길거리에 가변차선이 부쩍 늘었다. 이제 고정 차선만으로는 많은 교통량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몇몇 터널의 왕복차선은 러시아워때 아예 일방통행로로 바뀌어지고 있다. 만약 이런 융통성 있는 교통행정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서울은 더할 나위없는 교통지옥이 될 것은 뻔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 규모가 커지고 국제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돈이나 상품 또는 시장을 다루는 정책도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을 입안,시행하는 관리들의 안목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시점에서는 전혀 딴판이 되니 알수 없는 노릇이다.
1백억 달러 수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 나라가 법석대던 70년대 후반에는 경제관료들이 밤을 새워가며 기업체를 독려하고 생산공장을 뛰어다녔다. 그때는 일사불란이란 말이 경제정책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주요한 수식어로 꽤 오르내렸다. 근로자 복지나 분배문제가 도외시됐다는 비판도 받았으나 관의 일사불란한 정책추진력은 오늘날 한국경제 발전의 동력원으로서 한 줄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을 둘러싸고 한 곳으로 몰려가거나 기울어지는 모습은 수출 6백50여억달러를 내다보는 현시점에서도 짙게 투영되고 있으며 때로는 엉뚱한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높은 사람이 어떤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면 너도 나도 그 일에 매달려 일을 벌이고 「활동성과」를 내놓으려 다툼을 한다. 그리고 그게 국제적인 분쟁거리의 한 요인을 만든다.
최근 우리나라의 「반수입 캠페인」을 둘러싸고 미국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사태에서 나타난 우리 내부의 맹목현상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작년에 해외 언론들은 우리들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다며 「졸부 한국」의 과소비를 조롱까지 했다. 자본재나 원자재 대신 사치성 소비재가 무더기로 들어오고 3년 호황에다가 땅투기로 떼돈을 번 사람들도 많아 더욱 흥청흥청댔다.
금년들어 무역적자가 몇달째 계속되는 상황에서 몇몇 소비자단체들이 「과소비 추방과 근검절약」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외제사치품 급증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정부가 「수입규제」를 주장하는 민간단체를 거의 공개적으로 거든 인상을 주었던 게 화근이 됐다.
일부 고위 관리들은 수입상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어떤 관청은 각 백화점 수입상품 매장의 축소및 철수 동향에 관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부했다. 정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미국의 관계 업자들이나 서울에 있는 EC(유럽공동체) 5개국 상무관들에게 전달됐다. 그들은 한국정부가 수입규제라는 「불공정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몰아 붙일 수 있는 호재를 얻었다.
그리고는 한국 소비자들의 근검절약운동이 불공정하며 정부의 지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해외여론을 몰았다.
지금까지 한국인의 과소비를 꼬집어 대던 외신들이 이제는 돌변하여 사치품「수입규제」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어느 기관은 그 동안의 행정지도로 특정품목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많이 떨어졌다는 홍보자료까지 내놓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
그런 일들이 보도될수록 기관장들의 업적이 올라가고 윗사람들로부터 더 좋게 평가받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이와같은 정보들이 외국과 어떤 마찰을 일으킬 것인지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수출 1백억달러 시대에는 그런 류의 자가PR나 사고방식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무역1천2백억달러 시대에는 우리가 수많은 국가를 상대하고 정보가 거의 예외없이 노출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에 가서 40억달러 상당의 여객기를 구매하며 성의 표시를 해도,또 대미 무역흑자가 급격히 줄어들어도 그들은 한국시장의 폐쇄적인 운용에는 만만치 않은 대응태세를 취할 것이다.
지난번에 대기업의 과다보유 토지를 처분토록 하라는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을 때 관계부처장관들이나 기관장들이 일제히 부동산 문제에만 몰려 실물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이상 경색현상이 나타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어떤 장관은 업체장들을 만나 부작용이 확산되지 않도록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점차 축소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가는 듯 하다가 어느 때는 크게 후퇴하는 돌발성이 너무 강하고,또 각 부처가 한꺼번에 문제를 몰아붙여 경제현상의 편중이 심하다. 「특이한 상황」을 전제로 한 정책추진 때문에 문제가 커지고 있다. 작년에는 실상보다 너무 확대해서 경제를 「위기」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이제는 사치품의 과다한 수입문제에 대해서도 모조리 무턱대고 달려들게 아니라 대외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좀더 격이 높은 묘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경제에서 가변차선 논리는 시대적 또는 국제적 시각에 맞춰 적기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들 일상생활의 흐름도 막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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