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 표정 바꾼 정부

중앙일보

입력

'북한 핵실험' 사태의 경제적 파장에 대한 정부의 진단이 심상찮다.

외국인 자금 이탈에 '사재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과거 북한의 도발 때마다 '평상심'을 강조하던 모습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다.

'안보 민감증'보다 오히려 '안보 불감증'을 경계하는 뉘앙스다. 극단적인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게 당국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0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출석,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조정 움직임 등을 감안할 때 자금이탈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 관련 경제분야 비상대응방안' 보고를 통해서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국와 일본의 자금이 홍콩과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홍콩계 자산운용사 페가수스 펀드매니저의 전망까지 인용했다.

권 부총리는 또 "이번 핵실험은 미국와 국제연합(UN) 안정보장이사회의 대응 등 향후 사태 진전에 따라 파급 효과의 폭과 깊이가 과거보다 심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시장 뿐 아니라 국내 불안심리가 조성돼 원자재, 생필품에 대한 사재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정부가 표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우려감을 보인 셈이다.

과거 북한의 도발시 정부가 보였던 반응과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지난 7월5일 북한 미사일 발사 당시 박병원 재경부 제1차관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 나갈 조짐은 없으니 동요하지 말라"며 심리적 안정을 호소했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부가 사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자세로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적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무리 작더라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 가운데 경제적 제재는 이미 상당부분 이뤄지고 있어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도발시 관례적으로 열던 금융정책협의회 대신 긴급 경제상황점검회의을 소집하고, 국무총리 주재로 격상한 것 역시 정부가 이번 사태를 간단치 않게 보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부는 이날 북한 핵실험 관련 5개 비상대책팀의 총괄대책팀장을 당초 재경부 차관보에서 제1차관으로 격상했다.

정부가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개성공단에 대한 태도에도 기류 변화가 엿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기존 입주 업체는 어쩔 수 없지만 신규 분양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정부도 계속 포용정책만을 주장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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