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동반에 배아픈 평양/북한,왜 대화재개 거부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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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긴장감 조성 내부결속 노린 고전적 수법/시간벌며 한중접근 견제 속셈
북한이 13일자 대남전통문에서 남북대화 재개를 거부하고 나선 것은 한소 정상회담에 충격을 받고 그들의 어깨너머로 교류한 한소 양측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한편 일단 폐쇄정책을 고수하면서 충격이 흡수되는 대로 장기적 대처방안을 재정립 하겠다는 시간벌기 작전의 두가지 측면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과 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에게 전통문을 보내 한소 정상회담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은 이 통지문에서 「귀측당국자(노태우대통령)의 청탁 구걸하는 식의 분별없는 처신」 「사대행위」 「반민족적 분열행위」라고 원색적인 비난를 퍼붓고 있다.
이같은 반응은 한소 정상회담에서 받은 충격의 깊이를 드러낸 것이며 북한은 그들의 노골적 불만을 분풀이하는 방법으로 대남 대화전략을 수정,강경노선으로 선회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북한은 당초 지난달 24일 김일성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시된 「조국통일 5개 방침」에 따라 31일엔 남북회담 북측대표단 연합성명에서 대화재개의사를 표시했었다.
따라서 북한의 지금까지 관행으로 볼때 이 다음단계로 비록 선전적 차원일망정 대화를 재개하는 제스처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한소 정상회담의 성사와 파문이 예상외로 큰데 놀라 일단 움츠리기로 한 것 같다는 게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외교적 고립감과 함께 남북문제에서의 주도권 상실이라는 불안감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우리 정부가 군축회담에도 적극 나서기로 하는등 북한의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하는 전향적 대북 정책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데 대해서도 대처방안에 상당히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그들의 내부정비등을 위해서도 남북대화의 문을 일시적으로 닫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됐고 이에따라 우리의 개혁ㆍ개방유도정책,남북 정상회담 실현노력,유엔가입 추진노력 등을 모두 비난,거부하는 내용의 전통문으로 대응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대남 강경자세를 보임으로써 한소 관계진전이 남북 관계개선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부각시켜 앞으로 한소 국교수립과 한중 관계개선을 견제하려는 대외적 효과도 계산에 넣었다.
또 대남정책면에서는 반한세력에 대해 그들이 제안한 「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투쟁과제로 제시하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측이 대화거부를 통해 가장 노리는 점은 대내적인 효과인 것 같다. 즉 대남 강경노선을 취함으로써 남북간의 긴장감을 조성시켜 내부결속을 꾀하려는 의도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날 전통문에서 「그 무슨 개방ㆍ개혁문제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폐쇄정책 고수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북한은 현재 심각한 경제난과 동구유학생들의 잇단 탈출등으로 체제일각에서 누수현상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달리 체제를 유지할 대응방안을 마련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이같은 대화거부ㆍ폐쇄정책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느냐는 소련의 개방압력과 한중 관계개선의 속도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은 오는 9월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한중관계에도 상당한 진전을 얻는다는 목표로 대중국 외교를 펼칠 작정이다.
그래서 한중관계가 크게 개선된다면 북한측은 상당한 곤경에 빠지게 된다.
북한은 소련과의 소원해진 관계에 이어 마지막 남은 「고립의 맹방」인 중국에도 일방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남전략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으며 남북대화문제에서도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앞으로 대화가 재개돼도 진정한 남북 평화공존정책으로 나오는 것은 김일성체제의 변화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40여년간 대남 적화통일을 기치로 폐쇄통제사회를 유지해 왔던 김일성 본인은 어떤 방식으로도 평화공존정책으로의 전환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오는 92년 자신의 80세 생일을 계기로 김정일에게 주석직을 물려주고 「새 지도자의 새 정책」이란 관점에서 대남정책도 전면 수정될 수 있으리란 관측도 나오고 있어 남북관계의 극적인 진전은 아직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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