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설비투자 인색/호황때도 「재테크」만 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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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작년 투자진척률 80년대 들어 최저/한국산업은행 분석
국내 대기업들은 86∼88년의 호황으로 이윤을 많이 남겼으나 설비투자는 남의돈으로 하고 자기돈으로는 가능한한 주식과 부동산매입 등 재테크와 서비스업진출에 열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작년에 제조업설비투자는 80년대중반이후 가장 부진했을 뿐아니라 수출업체의 설비투자는 오히려 전년대비 1.9% 감소,투자구조의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나마 대부분의 투자가 기술개발보다는 단순설비확장에 치중되었으며 그것도 당초 계획에 못미쳐 투자진척률(91.3%)이 80년대이후 가장 낮았다.
30일 한국산업은행이 한국은행과 산은 등 금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업의 외부자금의존도는 3년간 호황에 따른 내부자금축적으로 85년 54.0%에서 88년 34.4%(대기업은 30.5%)로 크게 낮아졌으나 설비자금의 외부의존도는 오히려 85년 63.6%에서 89년 66.9%로 높아졌고 올해는 69.5%로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주식과 부동산매입등에 쓴 돈의 규모는 85년에 전체자금의 6.6%였던 것이 86년 6.9%,87년 9.1%,88년 12.1%(대기업은 12.6%)로 만3년 사이에 두배 가까이 불어났다.
한편 산은이 국내 주요광공업체를 대상으로 설비투자부진원인을 분석한 결과 작년에 제조업설비투자증가율은 전년대비 16.5%에 그쳐 86∼88년 3년간의 연평균 증가율(31.7%)은 물론 89년도 일본의 제조업설비투자 증가율(26.3%)에도 크게 못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조달 외부의존 갈수록 커져/작년 수출업체투자 오히려 감소(해설)
산은이 국내 2천2백여개 주요기업 및 금융기관자료를 종합한 제조업설비투자 부진원인분석은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설비투자를 늘려가고는 있으나 투자내용이 선진국에 비하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한편으로는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대로 투자수익률을 좇아 열심히 부동산과 주식을 사고 팔고 했다.
기업의 재테크를 나쁘다고만 몰아치는 풍토는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미국ㆍ일본 등의 선진국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착실히 투자를 늘려가고 있고 특히 경기변화에 관계없이 연구개발투자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우리기업의 재테크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수출기업의 설비투자가 88년보다 줄어든 것도 보기드문 일이고 89년에 제조업의 연구개발투자증가율이 거의 제자리걸음(전년비 1.8%증)을 한 것은 저만큼 앞서 토끼뜀을 하고 있는 상대를 따라잡기 위해 분발하기는 커녕 내수활황에 올라타고 앉아 쉬엄쉬엄 거북이 걸음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기업의 재테크는 설비자금조달 방법을 들여다보면 금세 드러난다.
증시규모가 최근 수년간 크게 커지면서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조달규모가 85년 7천9백80억원에서 89년에는 11조1천2백50억원으로 크게 늘었으나 유상증자로 조달한 돈중 설비투자에 쓰인 돈의 비중은 85년 45.6%에서 22.8%로 떨어졌다.
이 결과 제조업이 주식 및 부동산 등에 투자한 기타자산은 85∼88년사이에 두배 가까이 늘어났고,최근 대기업들의 부동산 「자진매각」조치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재테크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 설비투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89년의 투자내용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작년에 수출입업체의 투자는 88년보다 줄어들었으며 전체 제조업으로 봐도 수출을 겨냥한 투자가 4.8% 증가한 반면 내수기업들이 국내수요를 겨냥한 투자는 14.8% 늘어났다.
제조업의 설비능력이 86∼88년 3년간 연평균 35.0%,89년에는 11.0% 증가한데 비해 연구개발투자는 86∼88년 3년간 연평균 30.0%,89년에 1.8% 증가한데다 총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4%수준에 그쳤다. 일본등 선진국이 이미 완벽한 기술투자체제를 갖춰 투자한 돈이 그대로 기술개발로 이어지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초기단계에 있음을 생각할때 그 격차는 더 커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선진국의 경우 다국적기업들이 전문화돼 있어 투자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반면 우리는 대기업들이 여러 업종에 진출해 있으므로 전문성이 떨어져 투자의 집중도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국내기업들이 외형확대속에 생산성의 하락을 경험했지만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제경제환경속에서 살아남고 성장을 계속하려면 결국 투자를 늘려 나감과 동시에 양적 확대보다 질적투자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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