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 진열(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세상엔 근엄한 겉치레들이 있다. 결혼은 그 교습장이다.』
일찍이 스페인의 철학자 우나무노가 한 말이다. 겉치레(pretense)란 말은 잘난체하기,허세부리기,거짓 꾸미기 등의 뜻도 있다. 하필이면 경사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심사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나무노가 요즘 우리나라의 어느 결혼식장에 초대받았다면 그보다 몇갑절은 더한 말을 했을 것 같다. 먼저 결혼식장에 한번 가려면 한숨을 몇번은 내쉬어야 한다. 길을 메우는 자동차들이 그렇고,드디어 식장에 들어서면 발길을 가로막는 유명인사들의 화환과 그 이름에 놀란다.
하기야 이것은 마음 약한 보통사람의 얘기지만 한숨 내쉴 일은 아직도 몇번은 더 남아 있다. 돈봉투 들고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축복의 마음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만다.
게다가 어느 결혼식장에선 친절하게도 식권까지 나누어 준다. 거기엔 거듭 친절하게도 신랑집,신부집 식당을 분별 못할까봐 주의사항도 적혀 있다. 일껏 찾아간 그 식당의 음식하며,시중이라니 예의와는 절벽을 쌓았다.
이것은 숨김없는 우리의 결혼 풍속이다. 이제 그것은 더하면 더했지 나아질 것 같지않다. 그런 결혼식장을 우리는 언제까지 찾아다녀야할지 생각만해도 짜증이 난다.
요즘같은 세상에 옛날의 질퍽한 잔칫상으로 되돌아 가자고 얘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결혼풍속을 내버려두자고 말할 사람은 더구나 없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서 새로운 풍속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은 돈봉투나 화환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먼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필경 그런 소문이 나면 그 결혼식은 정말 축복과 환희로 넘칠 것이다.
자,어디서 이런 결혼청첩장이 날아왔다고 상상해 보자.
『­부탁의 말씀. 화환과 축의금은 어느 경우도 받지 않습니다. 혹 기쁜 마음으로 1만원상당 이하의 선물을 준비하시면 그것은 정성스럽게 받겠습니다. 진심에서 드리는 부탁 말씀이오니 모두를 위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결혼식,장례식장의 화환진열을 단속한다고 한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지만,하면 당장 할일이지 7월부터 벼르는 것은 뭐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