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9일 … '휴가 같은 추석' 아이디어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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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을 앞둔 수험생들은 추석에도 쉴 수 없다. 수험생들이 28일 서울 노량진의 한 단과학에서 연휴기간에 진행되는 유명강사의 추석특강 시간표를 살펴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추석 황금연휴가 사실상 30일 시작된다. 다음달 8일까지 무려 9일 동안이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한가위는 아니다. '시간은 많고 돈은 없다. 그래도 방에서 TV만 보기에는 너무 우울하고…'. 불황 탓에 주머니가 가벼워진 사람들은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실속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있다.

◆ 알차게 보내야지=이색적인 계획을 세운 사람도 많다. 회사원 김진미(22)씨는 연휴 때 얼굴에 있는 점을 빼기로 했다. 그는 "점을 빼고 치료하는 데 사흘 정도 걸린다"며 "따로 휴가를 내지 않고 이 기간을 이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직장인 조모(27)씨는 평소 때는 하지 못했던 라식수술을 받을 계획. 서울 강남 B안과에는 수술 예약이 평소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모(29)씨는 피부과에서 잡티 제거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직장 일이 많아 평소 외모를 가꾸지 못했던 임모(31.여)씨. 그는 이번에 매직스트레이트 파마를 하고 새 옷을 사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매직스트레이트는 시술하는 데 세 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파마 뒤 2일 동안 머리를 감을 수 없어 연휴가 아니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모(38)씨는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온라인쇼핑몰에서 아령 세트도 구입해 놨다. 귀향이 뜸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차라리 미팅 계획을 줄줄이 잡자"는 이야기가 인터넷 댓글에 부지기수로 올라와 있다. 정모(30)씨는 추석연휴 동안 세 건의 선이 잡혀 있다. 밀렸던 선을 몰아 보기로 한 것이다.

서울 대치동.목동.중계동 학원가에는 추석이 없다. 서울 중계동 L학원 관계자는 "학원은 노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추석 당일은 고3 학생을 위한 특강이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용돈을 벌거나 이직 준비를 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대학원생인 최모씨(27)는 할인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부모님에게 번번이 용돈을 받아 쓰는 게 민망해 차라리 연휴 때 돈이나 벌자고 생각했다. 그는 "고향에는 못 가지만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해 좋다"고 했다. 직장생활 3년차인 조모(28.여)씨는 평소에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이직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취업사이트 이곳저곳을 찾아 집중적으로 이력서를 넣을 계획이다. 조씨는 "무엇보다 동료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이직 서류를 넣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밖에 서울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추석 패키지를 즐기려는 사람과 모처럼 텅 빌 서울 시내에서 한적하게 고궁 나들이를 즐기거나 이벤트가 풍성한 극장을 찾겠다는 사람도 많다.

◆ 벌써 걱정된다=주부 손모(39)씨는 으레 추석 사나흘 전부터 몸과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미 무거워져 있다. 명절 음식 준비는 물론, 긴 연휴를 맞아 집에서 쉴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도 오래 하게 생겼다. 남편이 집안의 둘째라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큰동서는 맏며느리여서 자신보다 부담이 더 크다. 간호사로 일하는 결혼 5년차 주부 강모(33)씨는 병원 일과 집안일,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달력의 '빨간 날'만 빼고는 모두 직장에 나가야 하고, 본격적 연휴가 시작되면 시댁 일을 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이사인 이민용(44)씨는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지만, 나머지 날에는 뭘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염태정.김필규 기자<yonni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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