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본토 방송선 민주여신호 대만엔 「뜨거운 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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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3월 중순 프랑스 라로셸항을 떠났던 「민주여신호」가 57일간의 항해 끝에 지난 13일 대만의 기륭항에 입항했다.
대중국 본토 방송선인 민주여신호에는 9명의 외국기자와 11명의 프랑스인 승무원들이 탑승하고 있어 대만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대북당국의 심기는 이 방송선으로 인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북경당국이 민주여신호에 대해 무력을 써서라도 해상방송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일의 리덩후이(이등휘) 총통의 제8대 총통 취임을 계기로 본토와 적극적인 관계개선을 계획하고있는 대만정부에 민주여신호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있다.
공산장권에 대항, 자유의 방송을 하겠다는 민주여신호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원할 경우 비교적 순항하고있는 본토와의 관계에 결정적인 금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을 고려, 대만은 이 방송선에 대해 세 가지 원칙을 정해놓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행동할 지침을 마련했다.
입항허용과 기름 등 보급품은 지원하되 민주여신호의 활동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으며 공 해상에서의 해상방송은 국제통신기구(ITU)의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에 ITU회원국인 대만으로서는 이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입각, 대만은 방송을 위해 필수시설인 전파발사탑의 대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민주여신호가 지난해 천안문 사태전의 「북경의 봄」을 주도했던 우얼카이시(오이개희), 차이링(시령) 등 민주투사의 활약상과 소련·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소식과 관련한 방송을 할 것이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어떠한 행동도 현 상황에서는 원치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이 같은 고민은 최근 들어 추진중인 획기적인 대본토 개방정책을 살펴볼 때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일 대만 입법외원(국회의원) 6명의 공식 방문까지 허용, 이들과 리펑(이붕)총리·우쉐첸(오학겸) 부총리 등 중국정부 고위당국자들과의 회담에서 양국 정부지원을 받는 민간차원의 무역대표사무소 설치까지 제안받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만은 9월의 북경아시안게임에 5백여명의 선수단을 전세기 편으로 제3국을 거치지 않고 북경까지 직송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민주여신호의 입장에서는 믿었던 대만에 발등을 찍힌 꼴이 됐다.
북경당국의 잠수함시위 등과 홍콩의 기항거부, 항해 도중의 중국선박들에 의한 항해방해 등 갖은 고초를 무릅쓰고 일단 목적지 근처까지는 왔지만 막판 방송실시를 눈앞에 두고 의외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화교들과 프랑스의 18개 언론기관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받고있는 민주여신호가 당초 계획대로 자유의 방송을 중국에 쏘아보낼 수 있는 열쇠는 이제 대만당국의 손에 쥐어져있는 셈이다.
자체내 민주화개혁과 관련, 가뜩이나 진통을 겪고있는 대만으로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받은 셈인데 민주여신호에 대한 지원 강도가 곧바로 본토정책과 직결되어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있다.
한편 일본의 사카모토 관방장관은 14일 민주여신호가 일본국내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일본 입항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중국당국의 「어떤 형태의 지원 불원」방침과 정면 배치되는 일이며 민주여신호 문제는 자칫 외교적 차원으로까지 번질 상황에 처해있다. 〈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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