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소보원] "손님이 박스 뜯었잖아요" 황당한 건강식품 상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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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올 추석 롯데백화점에서 처음으로 건강식품 선물 세트의 판매량이 갈비 세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건강기능식품의 수요가 늘어난 결과다. 키토산.가시오가피.스쿠알렌.비타민 등 종류도 다양하다. 건강식품은 전문 매장이나 홈쇼핑 등에서 팔기도 하지만 상당수 제품은 방문 판매 형식으로 팔린다. 이 과정에서 판매원의 상술에 넘어가 제품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본 소비자가 적잖다.

주부 박모(42)씨는 최근 금액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건강식품을 샀다가 발을 굴렸다. 집으로 찾아온 판매원이 처음엔 "설문조사를 해 달라"고 해 선뜻 문을 열어줬다. 설문지 작성 후 판매원은 "관상을 봐준다" "혈색을 보겠다"고 하더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며 갖고 온 건강식품을 권했다. 즉시 박스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더니 세 종류의 제품을 2알씩 꺼내 먹어 보도록 했다. "막힌 혈을 뚫어 주겠다"며 전신 마사지도 해 줬다. 그런 뒤 계약서를 꺼내 작성토록 했는데 그 속엔 '본인 요청에 의해 개봉함' '반품 시 물건 값의 50%를 부담함' 등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판매원은 정확한 금액을 알려주지 않은 채 "본사에 돌아가 확인한 뒤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엉겁결에 계약서에 사인한 박씨는 판매원이 돌아간 뒤 계약서에 써 있는 금액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금액이 무려 877만원이나 됐던 것이다. 즉시 반품을 요청했으나 본사에선 이미 제품을 개봉했으니 위약금 50%와 마사지 비용 8만원을 내라고 했다. 박씨는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중재로 다른 부담 없이 제품을 반품할 수 있었지만 이 같은 피해를 본 소비자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소보원에 접수된 건강식품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176건이었다. 올 들어 8월까지는 벌써 177건이나 접수됐다. 현재 방문 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런 제품은 구입일로부터 14일 이내에 계약을 철회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제품을 훼손한 경우에는 되돌릴 수 없다. 판매업자들이 판매 과정에서 직접 박스를 개봉하는 것은 이를 악용하려는 의도다. 계약을 해지하려면 구입일로부터 14일 이내에 판매자와 제조회사 등에 해약을 요구하는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고, 제품을 반송할 때 택배 송장과 같은 영수증을 챙겨 둬야 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1국 강남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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