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공동개발도 거부한 북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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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팀스피리트훈련이 끝나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끝난 뒤 정리될 것으로 예상되던 북한의 대남정책 기본방향이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과의 금강산개발 계약 무효선언을 계기로 그 윤곽을 드러냈다.
그동안 5월말이후로는 남북한간에 어떠한 형태로든 다각적인 대화재개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돼 왔었다. 그러나 금강산개발 계획의 무효선언은 북한이 남북한교류의 문호를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 앞으로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우리측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성격을 띠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남북한의 접촉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징후는 한필성씨의 노모방문계획에 현실성없는 조건을 붙여 사실상 그의 방북에 제동을 걸었을 때 이미 나타났었다.
남북한 교류에 관한 북한의 이러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전에 없이 미국과의 접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몇주사이에 3개월이상 중단됐던 북경의 미·북한 외교관 접촉을 재개하고 미군 유해의 송환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워싱턴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북한인사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워싱턴 학술회의에 북한의 유엔주재대사가 참석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대사급 외교관이 워싱턴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앞으로의 미·북한 접촉이 종래보다 확대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케 해준다.
폐쇄적인 북한을 국제사회에 더 많이 참여시킴으로써 그들을 개방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데서 그러한 관계발전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는 미룬 채 미국과의 대화폭을 넓히려는 북한의 자세에서 북한당국의 대남기본전략이 바뀌기는 커녕 오히려 종래의 경직된 자세를 굳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북한은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철수문제를 비롯,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논의등에 대해 우리측을 배제하고 미국만을 상대로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동구의 개혁등 국제정세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그 체제내부나 기본 외교전략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은 조짐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한번 남북한관계는 점진적인 신뢰구축이 선행되어야만 실질적 진전을 기대할 수 있으며 그런 작업은 북한측이 성실한 행동으로 우리 정부가 제의해 놓고 있는 여러가지 안건에 호응해 올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한 전제 때문에 정주영씨를 통한 민간경제 교류 구상도 나오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조치는 그러한 구상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한 당국과의 합의를 토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교류는 그것이 어떤 차원의 접촉이든 항상 깨질 위험을 안고 있음이 다시 확인되었다.
앞으로 북한이 대화테이블로 나오도록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다시는 국민의 기대가 이번처럼 환멸로 끝나지 않도록 정부는 의연하게 현실성있는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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