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니」 재회 포기한 한필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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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사귀환 보장않으니 오지 말라는 뜻”
『할 수 없디요. 저쪽(북)에서 오지 말라카는디….』
40년을 기다려온 어머니와의 재회가 북측의 무사귀환보장 거부로 눈앞에서 좌절된 한필성씨(56)는 노모를 위해 준비했던 보청기를 만지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씨는 3월14일 일본 삿포로에서 40년만에 누이동생 필화씨(48ㆍ북한 빙상연맹서기장)를 만나 어머니 최원화씨(86)의 생존을 확인,같은 달 28일 고향방문 의사를 북한에 전달했었다.
지난달 20일 북한당국의 「환영」답신을 받았고 우리 정부로부터도 방북승인도 받았다.
한씨는 같이 북한에 가려고 했던 부인 홍애자씨(53)와 함께 노모를 위해 보청기ㆍ옷감을,누나ㆍ남동생ㆍ여동생ㆍ조카등을 위해 재봉틀ㆍ자전거ㆍ옷등 선물을 준비하면서 꿈같은 날들을 보내왔다.
그러나 북측은 한씨의 「무사귀환」 요구에 대해 9일 대남 전통에서 ▲어머니의 소원대로 한씨가 아들등 일가족을 모두 데리고 와야 하며 ▲귀환문제는 어머니와 한씨가 결정할 문제라고 못박아 한씨의 꿈을 깨뜨렸다.
한씨는 『이는 오지 말라는 뜻』이라며 『북측이 무사귀환을 보장하지 않는 한 갈 수 없다』고 밝혔다.
한씨의 가슴이 더욱 아픈 것은 이번 계획이 개인자격의 첫번째 고향방문이어서 특히 실향민들의 커다란 기대를 모아왔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의 5천여평규모 농장에서 옥수수등을 경작하는 한씨는 이북출신 실향민들로부터 하루 2∼3차례씩 『정말 기대가 크다. 무사히 다녀오라』는 격려전화를 받았다.
9백여명의 동향회원으로 구성된 진남포시민회는 「망향일념」 휘호를 노모선물로 전달했으며 한씨의 진남포 제2중 6회동창생 40여명은 성금을 모아 전했고 한씨집 근처에서 살았던 동향인 10여명은 『꼭 좀 찾아봐 달라』며 가족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 주었다.
한씨는 『어쨌거나 방북을 포기하게 돼 월남실향민들에게 죄송하다』며 『베를린 장벽도 무너졌는디 이눔의 철조망은 왜 이리 질긴지…』라고 한탄했다.<김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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