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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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르벨이라는 변호사가 어느날 파리의 리옹역 화물예치소에 나타나 이쑤시개 한개를 내놓으면서 잘 보관해 달라고 했다. 직원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여보시오,사람을 놀려도 분수가 있지』하고 그 청을 거절했다. 이에 분격한 변호사는 공공사업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사건은 간이 재판소에서 지방재판소로,그리고 고등재판소에서 최고 재판소로 옮겨지는 동안 20년 세월이 걸렸다.
결국 최종 판결에서 변호사의 승소로 끝났는데 소송비용이 무려 4만달러나 들었다. 물론 국가에서 전액 부담했지만… .
『악법도 법』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은 소크라테스다. 그는 그 악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독배까지 마셨다.
그 소크라테스의 『대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만일 국법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3중의 부정을 범하는 것이다. 즉 자기에게 생을 부여한 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요,자기를 양육한 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며,나아가서는 복종하기로 약속해 놓고 이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법은 의복과 같아 그것을 입는 사람에게 꼭 맞아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그렇다고 한벌의 옷이 모든 사람의 몸에 꼭 맞을 수는 없다. 때로는 조금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올림픽 경기에 이기는 것보다 평생을 두고 국법을 잘 지켰다는 명성을 얻는 사람이 오히려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법은 존엄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법의 권위가 무참하리만큼 땅에 떨어졌다. 그것은 법을 집행하는 쪽도,그것을 지켜야 하는 쪽도 모두 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노태우대통령은 7일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하면서 특히 법질서 확립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법경시 풍조를 뿌리뽑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직사회의 준법정신이다. 일찍이 다산은 『무릇 조정의 고관이 관절로서 청탁하는 자는 이를 들어줘서는 안된다』고 했다. 관절이란 요직에 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어 청탁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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