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 佛 '소피아 앙티폴리스'본받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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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대덕연구단지가 나아갈 방향을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이정협 박사는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개발, 기업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연구개발 클러스터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 같은 첨단 과학단지로 태생은 같지만 현재의 위치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남부 해안의 니스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1968년 피에르 라피트라는 해양대학의 학장이 과학과 문화.지식이 합쳐진 미래도시를 구상한 것이 단초가 됐다. 이를 눈여겨본 지방정부에 의해 개발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라피트 교수의 해양대학이 들어섰고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지리적인 불이익으로 침체기를 겪으면서 '첨단기술의 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72년 '국가적인 부처간 위원회'가 소피아 앙티폴리스 개발을 국가사업으로 지정했지만 부처간 비협조로 난항을 겪어야 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 개발이 본격화한 것은 75년 5개 지방정부의 신디케이트가 형성되면서부터다. 세제 혜택 등의 '당근'을 총동원해 에어프랑스.IBM.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을 불러들였고, 그 결과 77~81년 고용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후 82~89년 투자가 일곱 배 증가하면서 완전히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83년 국립정보기술.자동화연구소(INRIA), 88년 단지 관리본부인 지역개발청(SAEM)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현재 다국적 기업의 유럽본부.중소기업. 정부출연연구소.대학 등 총 4백여 기관에 고용인원은 9천5백여명에 달한다. 이로써 산.학.연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연구개발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건국대 김준모(행정학) 교수는 "90년대 들어 동유럽이 앙티폴리스 내 연구인력을 스카우트해 가는 바람에 어려움도 따랐지만 각종 인센티브 제공으로 벤처기업 입주를 장려,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개발의 주체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를 거쳐 다시 민간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적극 반영한 결과란 설명이다. '경영자 클럽 하이테크클럽 데이터베이스 포럼' 등 경영과 기술의 만남을 주선하는 각종 협회가 구성돼 기술의 사업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2천3백㏊의 부지 가운데 녹지를 90%로 해 환경친화적인 단지로 가꾼 것도 고급인력과 해외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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