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왓킨스는 '고스톱 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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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프로농구 원주 동부는 지금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20일 도요가와에 있는 일본 프로농구 OSG 체육관에서 훈련을 마치고 선수단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훈련에 지친 선수들은 대부분 살짝 잠이 들었습니다. 버스의 엔진음에 굵직한 저음이 섞인 것은 도요가와를 떠난 지 30분쯤, 오와타를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고 뒤를 돌아봤더니 뒤쪽 좌석에서 외국인 선수인 자밀 왓킨스가 미간을 찌푸린 채 솥뚜껑만 한 손에 뭔가를 숨긴 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세상에나,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화투'였습니다. 새내기 권철현과 고스톱을 치고 있는 중이었네요. 한 점만 더 따면 이기는 순간에 그는 자기가 낸 패를 자기가 먹어가는 '쪽'으로 권철현의 패까지 덤으로 받아 이겼습니다.

프로농구에서 '한국형 용병'은 많습니다. 그러나 왓킨스처럼 조용히, 그리고 깊이 적응한 선수는 드물죠. 김치나 라면, 소주를 잘 먹는 정도가 아닙니다. 2004~2005시즌부터 동부에서 뛰기 시작한 그는 한국의 동료와 진짜 친구가 됐고, 함께 한국의 문화를 즐기는 사나이입니다.

왓킨스에게 고스톱을 가르친 '친구'는 프로 3년차 가드 한상민입니다. 왓킨스는 미국에 돌아가서도 한상민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한 시간 넘게 통화하곤 했다네요. 전창진 동부 감독은 "한상민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 둘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기에 한 시간 넘게 통화하는지 모르겠다"며 신기해 합니다.

전 감독은 "왓킨스가 고스톱을 쳐서 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왓킨스는 미국 친구들에게 고스톱을 가르쳐 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왓킨스는 '내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시즌 중에는 양경민과 리바운드 잡기 내기를 하곤 하죠. 골프 핸디캡처럼 몇 개 접어주고 하는데, 지난 시즌엔 5개를 접어주고도 이겼습니다. '고스톱 왕' 왓킨스의 올 시즌 농구장에서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나고야=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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