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에 북한 법인 계좌 4개 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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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측 법인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이미 개성공단 내 우리은행 지점에 4개의 금융계좌를 개설해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통일부는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왔으며 "위원회 명의 계좌개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까지 은행 측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 우리은행도 적절성 문제 제기=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20일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통일부는 3월 28일 우리은행에 보낸 공문에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우리 측 인원들로 구성된 기관으로 계좌 개설은 협력사업 승인범위(남측 인원.기업만 대상) 내 행위"라고 밝혔다. 이 공문은 우리은행이 2004년 12월에 개설해 준 4개 관리위 계좌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 달라고 통일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데 대한 회신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관리위는 사실상 남측이 운영하는 기관으로 해당 계좌로 남측 직원의 경비 등을 관리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한 대북 송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리위는 명백한 북측 법인이다. 통일부 설명과 달리 북한 측 인원도 근무한다. 이 때문에 통일부가 규정을 너무 느슨하게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지난해 9월 관리위 명의 차명계좌를 요청한 적도 있어 계좌의 운영 실상에 의혹이 쏠린다.

◆ 무리한 북한계좌 개설 추진=관리위 계좌 개설과 별도로 통일부는 관계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 '중앙특구개발총국' 명의의 계좌를 만들어주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우리은행 측이 끝까지 버텨 계좌 개설은 무산됐다. 다음은 권영세 의원이 우리은행 측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3월 7일 관계부처 대책회의 회의록의 핵심 내용.

▶통일부=공단사업 본격화 시점에서 북한계좌 개설 문제로 난관에 직면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협력사업의 범위 조정, 미국에 대한 자금 흐름 투명성 설명으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은행의 현명한 결정을 요청한다.

▶우리은행=국내법 문제와 미국 재무부의 반(反)테러법,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문제의 해결 없이는 계좌 개설건 수용이 곤란하다.

▶재경부=북측 진의가 뭐고 어떤 목적으로 이슈화하는지 명확하지 않은데 은행에 양보를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

▶외교통상부=미국을 자극할 여지가 있는 금융관련 사업은 조급한 추진을 지양해야 한다.

▶국가정보원=북측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안 된다.

◆ 237만 달러 편법송금=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은 재경부 제출 자료를 근거로 "2005년부터 6월까지 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에서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편법송금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52차례에 걸쳐 116만4000달러가 송금됐고, 올해도 3월까지 49건 120만6000달러가 송금됐다는 것. 재경부도 "한국은행 총재에게 신고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1년6개월간 편법적 외환거래가 이뤄졌다"고 인정했다. 재경부는 이런 문제점을 파악해 7월 관련 지침을 바꿨다.

◆ 의혹 키운 통일부=양창석 통일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을 자청해 북한의 첫 계좌요청 시점을 12월로 말했다. 그렇지만 몇 시간 뒤 지난해 9월이었다고 번복했다. "3월 일단락된 사안"이라고 했지만 같은 달 28일에도 관리위 계좌 개설 검토 공문을 은행에 보내는 등 여진은 계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개성공단 자금문제에 의혹이 쏠린 상황에서 통일부는 안이한 대응과 앞뒤 맞지 않는 해명으로 불신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제기된다.

이영종.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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