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 대변인 자처 '정치력'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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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티 분야랏글린 육군 총사령관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

태국 쿠데타의 주역인 손티 분야랏글린(59) 육군 총사령관은 화려한 경력 못지않게 종교적 성향으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이슬람교도 신분으로 육군의 수장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는 태국 인구의 4%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성실성과 능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 1969년 왕립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왕립 보병단의 장교로 군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특전사령부 등 주요 부대의 지휘관을 두루 거쳤다. 베트남전에도 참전해 부하들의 신망이 높았다.

이처럼 '타고난 군인'으로만 여겨졌던 그는 지난해 커다란 전기를 맞았다. 태국 남부에서 이슬람 폭동이 발생하자 '출신 배경이 비슷해 무슬림 반군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란 이유로 육군 총사령관에 전격 임명된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반군세력 지도자들과 직접 담판에 나서는 등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그는 각종 현안에서 국왕의 비공식 대변인을 자처하며 정치적 보폭을 넓혀갔다. 올해 4월 탁신 친나왓 총리의 퇴임을 둘러싸고 정치적 혼란이 고조됐을 때에도 "국왕이 최근 계속되는 정치적 언쟁과 소요 사태를 매우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며 정치권에 자제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국왕의 병사로서 국왕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게 나의 제1 임무다. 국왕의 말에 무조건 충성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국왕이 그를 더욱 총애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번 쿠데타가 사실상 국왕의 사전 묵인 하에 감행된 것이란 추측도 그래서 나온다.

반면 탁신 총리와는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슬람 폭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문제를 비롯해 사사건건 충돌을 빚었다. 올 7월에는 총사령관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당시 탁신 총리는 자신의 최대 정적인 프렘 탄술라논다 장군 계파로 분류되는 손티 총사령관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최측근인 폼차이 크란럿 장군을 앉히려 했다. 이에 손티 총사령관은 한발 앞서 탁신 추종파 장교 129명을 전격 전보 조치하며 맞섰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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