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담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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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작하는 MBC의 16부작 수목 드라마 '나는 달린다'(연출 박성수.극본 이경희)는 좀 별나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스타 배우도, 화려한 전작을 내세우는 유명 작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 주인공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나 다름없고, 작가는 비록 유능한 카피라이터였을지언정 단막극 한 번 집필한 적 없는 완전 초보다. 그렇다고 신세대의 혼전 동거 같은 톡톡 튀는 내용인 것도 아니다. 자극적인 줄거리는 커녕 공장 용접공 무철(김강우 분)과 백수나 다름없는 사진기자 희야(채정안)의 밋밋한 사랑 이야기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줄거리의 전부다.

그런데도 시청자 게시판은 벌써부터 게시글이 4백 건에 달할 만큼 뜨겁다. 이런 열기는 순전히 박성수 감독 덕이다. 지난해 '네 멋대로 해라'로 매니어를 확보한 박감독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 네티즌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100% 외면했을 드라마다. 그런데 박성수 PD님이란다. 그래 뭔가가 있을 거야. 나는 박성수라는 이름 석자를 믿는다'라는 한 네티즌의 글은 시청자들이 박감독의 드라마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네 멋대로…'와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의 미덕은 너무나 사실적인 일상성이 될 듯하다. "드라마 같은, 뻔한 드라마가 아닌 새로운 드라마"를 늘 말해온 박감독이 "현실과 무관하게 연애만 하다 끝나는 작위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 멋대로…'는 주인공을 시한부 인생으로 설정하는 등 그나마 극적 구조가 있었지만 '…달린다'는 그마저 배제한 '위험한 드라마'다.

세 차례의 오디션을 통해 굳이 신인 김강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바로 현실감 때문이다.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 거기(극중)에 살 것만 같은, 연기자가 아니라 캐릭터가 살아 있는 배우를 찾았다"면서 "기성 연기자 중 한 명을 염두에 뒀지만 스케줄 때문에 포기했다."

전작 '네 멋대로…'에 이어 또 아웃사이더 얘기냐는 질문에 박감독은 "공업고등학교를 다닌 전력 때문인지 늘 공장노동자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 한다"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인 것도 같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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