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군부도 개혁바람에 흔들/민주화ㆍ군축으로 사기 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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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역”깨져 언론서도 비리폭로/국방보다 경제에 우선…설땅 점차 줄어/장교들 전직 고려ㆍ사관학교 인기하락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동구변화와 군축,민주화운동등 국내외의 급격한 변화에 휘말려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전군지도자회의에서 우크라이나공화국대표인 마티로잔대령은 자신의 연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가 공산당 1당독재를 규정한 헌법 제6조의 폐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조사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당내 보수파의 반대에도 불구,지난 2월 헌법개정을 단행하기 2개월전의 일이었다.
소련군은 육ㆍ해ㆍ공ㆍ방공ㆍ전략로킷군등 5개군에 모두 3백90만명의 병력을 보유,미국과 더불어 세계최강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방ㆍ개혁정책이후 급격한 동구공산정권의 붕괴,소련공산당의 1당 독재포기등 잇따른 「혁명적인」 변화는 소공산당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소련군의 초급장교ㆍ사병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련장교들은 정치보다는 군사전문가를 지향하는 경향이 높고 구러시아시대의 귀족풍의 세습장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안 대대로의 군인집안 후손만이 입학할 수 있는 사관초등학교도 있으며 임관후에도 「하급귀족」으로 대우받아 대학졸업자 초봉의 두배이상의 임금을 받는등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국방예산 8%삭감
그러나 동구변화에 이은 소련군철군ㆍ국방보다는 경제난 타결이 우선이란 정부 인식의 변화,군축ㆍ국방예산 삭감등 일련의 변화는 소련군의 초급장교들을 동요시키고 있다.
소련정부는 금년도 국방예산을 지난해에 비해 8.2%나 삭감한 7백10억루블로 책정했다. 뿐만아니라 미그기등 소련전투기를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미고얀 설계국의 기술자들을 설탕제조기계등 소비재 기계설비쪽으로 대거 이동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의 동구사태로 동구주둔군의 대거철군은 군인력포화와 시설부족현상을 불러 일으켜 장교ㆍ하사관등 15만명분의 주택이 당장 필요하지만 예산부족으로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경제적 어려움외에도 정치의 급격한 변화와 언론의 영향으로 장교들이 겪는 가치관의 갈등도 격심하다.
그동안 언론보도가 일체 금지된 채 베일에 싸인 성역으로 안주해 왔던 소련군은 민주화 운동이후 신문보도가 허용되면서 언론의 포격을 받기 시작했다.
신문ㆍ잡지들이 군대내 구타사건등 비리를 보도,군대의 인기가 급격히 하락했으며 최근엔 육군통신 감찰관인 도루킨중장이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간뒤 퇴역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또한 정치적 가치관의 변화로 소련군의 정치장교들은 더욱 입장이 약화돼 있다.
○「방패회」태풍의 눈
정치장교는 1917년 러시아혁명당시 백군과 싸우던 적군이 투항한 백군중에 있을지도 모를 첩자를 색출하기 위해 도입한 독특한 제도다.
지금도 연대마다 1∼10명까지 배치,공산주의 이념교육과 스포츠행사를 담당하거나 반당분자를 감시ㆍ색출하는 업무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지난 2월 헌법개정으로 복수정당체제가 됨에 따라 앞으로 있을 총선에서 공산당이 패배한다면 이들은 모두 전역해야할 운명이다.
이와같은 분위기 속에서 전직을 고려하는 장교수가 늘고 우수학생의 사관학교 기피현상을 불러 일으켜 군지도부에서 「인재부족」까지 우려하고 있다.
장교중에는 특히 개혁운동에 실제 참여하는 숫자가 늘고 있는데 최근엔 시트(방패)회란 군내 노동조합이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시트회란 지난해 3월 장교 3백여명이 군민주화,퇴역장병의 생활보장,징병제 폐지,직업군인제 도입등 급진적인 개혁을 표방,조직한 급진적 반체제 조직이다.
군지도부의 해산압력에도 불구,참여 숫자가 급격히 증가해 현재는 70개 도시에 3천여명으로까지 불어났으며 이중 50%이상이 현역군인이며 나머지는 예비역장교ㆍ군인가족으로 구성돼 있다.
시트회는 샤포시니코프 현역 중장이 명예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군수뇌부에서도 호응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급진개혁파인 옐친 최고회의대의원의 지역간 그룹(MRG)과 연대,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도로보수등에 동원
장교뿐만 아니라 일반사병들의 동요도 심해 사기저하ㆍ탈영병ㆍ징집거부등이 속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후 소련군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최근엔 군축등 평화무드로 전투훈련보다는 도로보수등 잡일에 동원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소련의 민족분규가 첨예화되면서 소수민족출신 사병들의 민족갈등이 노출,문제가 되고 있다.
소련은 복무기간 2년(해군 3년)의 징병제도를 채택,전군의 70%를 이로 충당해 왔다.
군수뇌부는 그동안 민족간 화합을 위해 각 민족출신 군인의 혼합배치를 원칙으로 해왔으나 민족분규후 이것이 오히려 불씨가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 독립사태직후 리투아니아 출신사병들의 탈영이 잇따르는등 민족분규후 카프카스 지방에서만 모두 1천2백명이 탈영했다.
○징집 집단거부사태
군수뇌부는 이에따라 『발트해3국과 남부이슬람공화국출신 사병을 자극하지 말라』는 긴급지시공문을 각부대에 보내는 한편 이들의 종교집회까지 감시하고 있다.
게다가 소수민족 공화국에선 소련군에 대한 반감까지 생겨 최근의 징집소집에선 모두 6천5백명이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군부내 보수강경파의 고르바초프에 대한 불만이 고조,보리스 그로모프 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은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잘못 이끌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근 고르바초프가 군이 아닌 보안군을 동원,리투아니아에 대한 무력시위를 한 점은 군의 분열과 고르바초프의 군에 대한 불신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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