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전담교사 필요하다(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6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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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정상적 지식습득 큰문제/가정서도 “전무”… 고민 못풀어 「전화하소연」만
경기도 수원시 P유치원 윤모교사(25.여)는 최근 학부형으로부터 『수업시간에 어린애들한테 그런 별 해괴망측한 소리를 다 하느냐』는 항의전화를 받고 몹시 당혹해 했다.
얼마전 한 남자원생이 수업도중 대뜸 『선생님 임신이 뭐예요』라며 큰소리로 질문하자 처녀인 자신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고,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은 부끄러운 생각도 들어 엉겁결에 『그런 건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에게 그말을 그대로 전해들은 학부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수업시간에 애들에게 셈하나 더 가르쳐 주지않고 쓸데없는 얘기나 한다는 핀잔이었다.
서울L국교 5학년 신체검사 시간. 이 학교 양호교사인 이모교사(34ㆍ여)는 여학생들만 따로 모아놓고 모두 눈을 감게한 뒤 『생리를 시작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으나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할 뿐 손든 학생이 한명도 없었다.
요즘은 여자들의 초경연령이 낮아져 그 나이쯤 되면 시작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 교사는 아이들이 생리에 대해 아직 잘 모르거나 알아도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자신이 생리한다고 하면 나쁜 학생으로 오인받을까봐 그러는 모양이라고 판단하고 생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임을 강조하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잠시후 한 학생만 머뭇머뭇 반쯤팔을 들 뿐이었다.
중3 수험생 아들을 둔 조모씨(서울서초구서초동)는 며칠전 아들방을 청소하다 우연히 책상서랍 안에 「이상한」잡지가 여러권 들어있는 것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옷을 발가벗은 외국여자들이 온갖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말로만 듣던 포르노 잡지였던 것이다.
『아니 이럴수가… 다른 아이들은 다 그래도 우리 아이만은 그러지 않을줄 알았는데….』조씨는 지금까지 온순하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해온 아들에 대한 심한 실망감과 함께 교과서대신 그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남편과 의논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것같아 혼자 알고 있기로 했다.
그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그런 책을 보면 머리가 산란스러워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타이르자 『공부하다 머리식힐때 본다』며 『엄마는 왜 남의 책상을 함부로 뒤지느냐』고 되레 소리치며 짜증을 부렸다.
이후 두 모자는 대화가 없어지고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아들은 「못된짓」하다 들킨것 같은 수치심으로 어머니를 피했고 어머니도 그런일로 아들과 다툰게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대한가족계획협회와 YMCA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성상담센터에는 하루에도 20∼30명의 청소년들이 전화상담을 해오고 있다. 이들 청소년들은 부모나 교사에게 자신들의 고민거리를 상의하지 못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전화로 상담이라기 보다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요…. 여자 속옷을 입는 버릇이 있는데요…. 그게 잘못된 건가요.』(고1.남) 『자위행위를 하면 키가 안큰다는데 사실인가요.』(고1.남) 『사촌 여동생과 관계를 가졌어요.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되는거죠.』(고2.남) 『친구와 호기심으로 비디오를 봤는데요. 비디오에 나오는 장면처럼 따라하고 싶어요. 머리엔 온통 잡생각뿐이고요,공부도 잘 안돼요. 그런데 섹스를 그렇게 하나요.』(고2.남) 『지난해 10월께 친구3명과 산에 갔었는데 폭력배 4명에게 폭행을 당했어요. 임신인것 같은데 엄마에겐 얘길 못하겠어요. 병원에 가볼수도 없고…. 죽고만 싶어요.』(중3ㆍ여) 이상은 대한가족협회와 YMCA성상담센터에 비친 상담사례다.
청소년들은 성에 대해 알고 싶은것도 많고 고민도 많다. 그러나 이들의 호기심이나 고민을 속시원히 해결할 곳은 거의 없는 상태다. 교사ㆍ학부모는 물론 우리사회 모두가 아직까지 성에 대해서만은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각급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성교육은 국교의 경우 실과,중ㆍ고교는 생물ㆍ가정과목에 들어있는 생식기관설명에 불과하고 학교에 따라 1년에 한번씩 슬라이드 상영등으로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S여고 나모교사(37ㆍ여)는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진학문제가 더 급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성교육에 대해 오히려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의사를 나타내는 선생님도 많이 있어 솔직히 나자신도 학생들한테 어느선까지 얘기해줘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않는다』고 털어놨다.
서울대 홍강의교수는 『비전공 교사들이 성에 대해 단순히 자신의 의견이나 원칙만을 되풀이할 경우 그릇되게 유도할수 있다』고 지적하고 『성교육이 하루속히 학교교육으로 정착되고 성교육전담교사제가 실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교수는 또 『대부분의 학부형들도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지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성이란 자연히 알게되는 것이란 생각에서 가정에서조차 성교육이 전무한 상태』라면서 『한창 호기심에 가득찬 시기에 학교ㆍ가정에서마저 이를 숨기거나 방치할 경우 친구나 불건전한 잡지ㆍ비디오등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성지식을 습득할수 있다』고 우려했다.<정재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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