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원 수도물·우지파동등 수수방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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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본격적인 소비자보호시대를 연다는 기대감 속에 출범했던 한국소비자보호원(원장 최동규)이 정작 소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각종 현실적 문제들에 등한할 뿐더러 주목적 사업인 소비자정책연구나 제도개선 사업도 부진해 새로운 위상정립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올해로 개원 3주년을 맞는 보호원의 안팎에서 최근 부쩍 지적되는 이같은 문제점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기 힘든 인적 구성, 관료적인 대다수 간부진과 실무진간의 갈등, 내부 인사에 대한 불만등이 누적된 결과로 여겨져 보호원의 체질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기획원 산하기관인 보호원은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도물파동, PVC·PE랩논쟁, 자몽파동, 공업용 우지라면 사건때도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최근의 위해농약농산물, 수입식품, 독과점업체들의 횡포들에 대해서도 수수방관해 『소비자보호원인가, 기업보호원 인가』『정부의 들러리인가』라는등 소비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민간 소비자단체들은 『보호원이 수도물파동·자몽파동등 사건발생시 순발력있는 대응을 못하는데다 사건발생후의 감시기능도 포기한채 행정부서나 대기업과의 마찰소지가 적은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최근 공개된 보호원 자체내 직원 설문조사(89년·1010월 조사, 직원 총2백56명중 1백84명 응답)에서도 ▲응답자의 75%가 보호원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형식적이고 미온적이며 ▲73.3%는 사업수행보다 내부 행정관리를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민간단체와 달리 소비자문제의 정책연구나 제도개선에 역점을 두어야할 보호원 사업이 질보다는 대외선전을 위한 양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즉 경제기획원·재무부·법무부등에 올린 정책건의나 시정건의한 연구사업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아 묵살되거나 「검토, 참고하겠음」의 수준으로 민원처리돼 국가예산의 낭비라는 비판도 있다.
또 보험·금융·의료부문의 피해구제가 보호원 활동대상에서 제외돼 있는데다가 상품품질비교 시험검사도 공업진흥청이나 민간단체에서 하는 것들과 중복되는 경우도 많아 「민간단체 보다 나을바 없다」는 자체내 지적(설문조사 대상의 35.9%)도 있었다.
보호원의 역할수행이 이처럼 기대이하에 머무르는 첫째 이유는 공무원출신이 70%를 차지하는 과장급 이상 간부진들의 관료적 경직성, 관계기관 눈치보기, 업무에대한 비전문성이 실무진들과의 원활한 호흡에 방해가 되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보호원 과장급 18명중 11명, 차장급 5명중 4명, 부장급 5명중 4명이 경제기획원·상공부·안전기획부등의 관공서 출신이다.
보호원 설문조사에서도 ▲36%가 보호원의 자율성·독립성의 전망이 어둡다고 응답했고 ▲60.3%는 중간관리층이 업무수행 능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
두번째 원인은 내부 인사문제에 대한 불만. 상당수의 보호원 직원들은 그동안 실시된 특별승진 사례들이 「업무상의 탁월한 업적」등 특별승진 요건에 의하기보다 특정기관 출신자나 간부급 주변인물에 대한 우대조처로 형평을 잃고 있다고 주장한다.
88년 12월에 결성된 노조설립의 배경중 중요원인도 「인사행정의 불합리를 시정해 직원들의 사기와 업무능력 저해를 막아야한다」는데 있다. 설문조사에서도 승진인사에서 ▲공정도가 결여돼있고(55.9%) ▲업무수행 실적이 반영안되며(65.2%) ▲파벌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60.9%)고 지적됐다.
이같은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보호원측은 지난해 12월 이후 인사규정 개정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한편 최원장은 보호원의 사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질책에 대해 『인적자원등 자체내 여건탓으로 소비자관련 모든 문제에 다 손을 댈수는 없다』며 『문제발생시 객관적인 증거를 갖고 대처하는 신중함이 필요하고 관계부처와 효율적으로 일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송보경부회장(서울여대교수)은 『연70억∼80억원의 국가예산을 쓰는 보호원이 독과점 업계의 문제, 수입개방에 따른 소비자 피해문제등 중요현안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다른사업 민간단체의 것과 다를바가 없어 국가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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