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칼럼

입법·사법·행정의 합작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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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기 한 달쯤 남은 대통령이 2년 임기의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새로 임명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온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다. 야당은 당장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가 새 정권에서 드러날까 봐 암수를 썼다"고 비난하고 시민단체들도 가만있을 리 없을 것이다.

전효숙씨 파문도 '정권의 과욕이 부른 참사'다. 전씨는 2003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씨를 재판관 신분으로 둔 채 국회에 헌재소장 임명동의를 요청하고 남은 임기 3년을 마치도록 했다면 '코드 인사'란 비판은 피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처럼 온 나라가 시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 드러난 것은 절차상의 위헌 문제다. 헌법 111조 4항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전씨에게 헌재 재판관직을 사임하게 한 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냄으로써 위헌 논란을 자초했다. 헌재 재판관이 아닌 민간인은 헌재소장에 임명될 수 없는 게 헌법에 명문화돼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만으로도 전씨는 헌재소장에 임명되기에는 결정적 흠결이 발생했다. 위헌심판을 다루는 헌재의 소장이 위헌 논란을 안고 임명된다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위헌심판을 청구한 사람이 "헌재 재판부의 구성이 위헌"이라며 헌재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헌재의 기능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또 하나의 위헌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헌법 112조 1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는 것을 위반했다는 말이다. 전효숙씨가 헌재소장에 임명될 경우 지난 3년에다 앞으로 6년, 합계 9년간 헌재재판관의 직위를 갖는다. 사실상 연임이다.

이런 이상한 형태의 연임이 위헌이 아닌지 물어보았다. 법원의 고위 재판관은 검토 끝에 '위헌'이라고 답변했다. 정종섭(서울대.헌법학) 교수도 '당연히 위헌'이라고 했다. 첫째 "차기 대통령의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전씨를 헌재재판관에 그대로 둔 채 헌재소장으로 임명할 경우 재판관으로서 남은 임기 3년이 소장의 임기가 된다. 그런데 현 정권이 전씨의 재판관 임기를 새로 시작하게 해 소장의 임기를 6년으로 늘리려 했다. 그 경우 차기 대통령은 물러나기 몇 달 전에야 새 헌재소장을 임명할 수 있으며 차차기 대통령은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대통령의 헌재소장 임명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다.

"법률상 연임이라 함은 임기가 끝난 뒤 임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며 임기 중간에 사퇴한 사람을 재임명하는 것은 헌법상의 임기제와 연임제에 위배된다"는 것이 두 번째다. 전씨가 헌재재판관의 임기 중간에 사퇴한 이상 다시 헌재재판관에 연임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헌재재판관이 될 수 없으니 헌재소장은 더욱 될 수 없다. 절차상의 위헌에 앞서 원천적 위헌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전효숙씨 사건의 발단은 대한민국의 현재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당초 이 문제를 검증했다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청와대의 자문에 응한 대법원과 헌재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절차상의 위헌 요소를 지적할 때까지 정부도, 법원도, 국회도, 헌재도, 법학계도 몰랐다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이 사건의 결말을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알 수 있다. 법을 다루는 법원과 헌재, 대한변협과 민변은 왜 아무 말도 않는가. 위헌 요소를 잔뜩 안고 있는 전씨 문제를 '정치적 꼼수'로 풀겠다는 국회는 도대체 어떻게 된 곳인가. 헌재소장이 몇 달 공백이라 해도 대한민국이 망하지는 않는다. 위헌을 얼렁뚱땅 넘기는 것이 훨씬 치명적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