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는 리투아니아 배신했다”/부시의 수수방관에 의회등서 성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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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의원들 “냉전종식여부 걸린 중대사태”대응 촉구/“「조용한 압력」만이 최선”백악관
미국등 서방은 리투아니아에 대한 소련의 무력사용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교차로에 맞닥뜨린 느낌이다. 리투아니아 독립선언사태이후 줄곧 부시미대통령은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을 향해 무력사용이나 무력위협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막상 소련이 최근 리투아니아출신 소련군탈영병들을 체포하는등 무력을 행사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미정부는 거의 함구자세로 돌아서 버렸다.□
무력을 사용할 경우 미소관계에 긴장을 고조시킬것이라는 등 엄중한 경고를 연발해 오던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도 『우리는 사태를 악화시키고 싶지않다』면서 지금까지의 태도에서 후퇴했다.
이같은 부시행정부의 태도 표변과 리투아니아 독립문제에 대한 미온적 자세에 대해 미의회는 공화ㆍ민주양당 모두 입을 모아 성토하고 있고 란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대통령은 『대국주의 이익을 위한 배신』이라고 공개비난하는 등 흥분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이 소련군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회피하고 있는것과 관련해 부시행정부 관리들은 우선 현단계로서는 발트해 연안국가들의 독립주장에 대한 소련측의 내심과 의지를 파악할수 없으므로 성급히 발트해 국가들의 편을 들수 없는 형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처지에서는 소련조치에 대해 불쾌한것은 사실이지만 공개적 비판언급보다는 외교적 채널을 통한 「조용한 압력」을 가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미관리들의 주장이다.
미행정부가 소련무력사용에 대한 대응책으로 은밀히 검토하고 있는 방안중 가장 심각한 조치는 오는 6월로 예정돼 있는 미소정상회담의 취소 가능성이라고 언론에 흘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소태도에 있어 지금과 같은 자세이외에 뾰족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에 대한 극적인 보복조치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부시행정부의 판단은 미국이 무슨 대응책을 사용하든간에 소련입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비관론이다. 고르바초프가 쉽사리 리투아니아에 독립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미국은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하면서 소련을 자극하는 행동을 취할 경우 미소관계 악화는 물론이고 고르바초프가 다짐해온 소련의 변화와 동구개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부시외교팀들은 우려하고 있다.
1940년 리투아니아등 발트해 3국에 대한 소련의 강제합병 이래 계속해 이들의 독립을 지지하는 기본입장을 포기한적이 없었던 미국이지만,당장 리투아니아 독립보다는 강대국 관계와 유럽 신질서에 더 큰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 표명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부시대통령은 노리에가대통령이 마약거래에 관련됐다는 이유로 졸지에 파나마 침공을 감행하는 명백한 내정간섭을 불과 몇개월전에 벌였던 사실을 상기할때 대소비판의 「도덕적 정당성」이 약할수 밖에 없다.
부시행정부의 희망사항은 최소한 고르바초프가 작년 6월 중국의 천안문사태와 같은 유혈진압만은 자제해주는 일인것 같다. 공화당소속 로버트 토리첼리 하원의원이 『냉전종식여부는 리투아니아 독립인정 여부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롯,의회가 맹렬히 부시행정부에 대해 리투아니아 지지를 촉구하고 있지만 「부시의 전략」은 리투아니아 사태와 의회흥분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한편 리투아니아 사태해결의 향배가 유럽 전체에 어떤 반응을 미칠지에 대해 우려하는 심정은 영국ㆍ프랑스등 서구도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대처영국총리,미테랑 프랑스대통령도 「불난집에 부채질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태도를 표명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미언론들도 리투아니아 사태에 대해 상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모스크바와 리투아니아 양측입장을 모두 고려,균형있게 취급하는 반면 워싱턴 포스트는 모스크바쪽에 사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타임스지는 최근 사설에서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이 정당한 권리임을 인정하며서도 고르바초프는 소련대통령으로 연방을 유지할 의무가 있으며,연방의 일부가 분리됨으로써 연방전체가 붕괴하는 사태로 파급되는 것을 막아야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원칙적으로 미국과 서방의 이익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지지하는 쪽에 있지만,지금처럼 소련에서 전면적인 개혁이 진행되는 시점에선 리투아니아의 독립지원에서 얻을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포스트지는 『리투아니아문제에서 도덕 이상 가는 가치란 있을수 없다』고 주장하고 1940년 소련의 리투아니아합병은 역사적으로 반도덕적 행위였다고 비난하고 있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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